[브릿지 칼럼] '유통 거인' 시어스의 몰락

박종구 초당대 총장
입력일 2018-11-01 15:19 수정일 2018-11-01 15:20 발행일 2018-11-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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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구 초당대 총장

유통거인 시어스가 지난달 파산신청을 했다. 시어스는 그동안 월마트 홈데포 같은 경쟁업체에 지속적으로 시장을 잠식당했다. 온라인 유통강자 아마존의 부상으로 결정타를 맞았다. 시장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전설적 유통기업의 서글픈 퇴장이다.

시어스의 역사는 1893년 역무원 리처드 시어스와 시계 수리공 알바 로빅의 동업으로 시작되었다. 상품 우편판매로 사세를 키웠다. 농촌지역 무료 우편배달 서비스로 내지까지 상품 공급이 가능해졌다. 1920년대에는 도심에 매장을 직접 조성했다. 중산층 가구가 주요 타켓이었다. 미국인의 삶에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60년대말 종업원이 35만명을 넘어섰다. 1973년 미국에서 가장 높은 527미터의 시어스 타워를 시카고에 건설했다. 매장이 3500개에 이르렀다. 80년대에는 올스테이트 보험사 인수 등 금융부문으로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90년대 접어들자 월마트, 홈데포, 베스트바이 등과 경쟁이 치열해졌다. 월마트의 저가 공세, 베스트바이의 맞춤형 서비스 등으로 시장점유율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20~30대 고객의 이탈 현상이 심화되었다. 보수적인 기업문화 때문에 디지털화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아마존의 도전이야말로 결정적 타격이었다. 부채가 급증하고 적자 매장이 속출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ESC 인베스트먼트의 에드워드 램퍼트가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시어스의 최대주주가 되었다.

2005년 시어스와 K마트를 합병했다. 합병 초기 몇 년간 성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와 주택시장 버블 붕괴로 주력 상품인 가구와 가정용품 판매가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2009년 숍유어웨이(ShopYourWay) 캠페인에 착수해 디지털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면 인터넷 라운지를 만들어 무료 와이파이가 이용 가능한 휴식공간으로 바꾸는 방식이다.

계속된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2013년 램퍼트가 최고경영자로 취임했다. 그러나 시장이 원하는 매장환경 개선이나 디지털 전략 강화 보다 자원의 금융화에 보다 역점을 두었다. 2005~2012년 주가상승을 위해 60억달러 상당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캐시카우인 의복 브랜드 랜즈앤드를 분사화하고 235개 매장을 세리테지에 매각했다. 5년전 25만명에 달하던 종업원 수가 7만명선으로 줄고 부채도 113억달러에 이르렀다. 7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결국 125년 역사를 뒤로한채 시어스의 간판을 내리게 되었다.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본업에 충실하지 않고 무분별한 사업 다각화의 폐해다. 과도한 금융화로 본연의 유통 경쟁력을 상실했다. 둘째로 디지털 전환에 뒤쳐진 것이 결정적 패착이었다. 데이터와 플랫폼으로 무장한 아마존의 공세에 속수무책이었다. 매장이 평균 4000평에 달해 임대료와 부대비용으로 영업이익을 창출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월마트의 ‘규모의 경제’와 아마존의 ‘디지털 경쟁력’에 대처하지 못해 고객 이탈, 비용상승의 문제를 극복할 수 없었다. 셋째로 지나치게 높은 임금과 복지혜택이 발목을 잡았다. 재직연수에 따른 주식 배당, 넉넉한 퇴직연금 제공에 상응하는 생산성 향상이나 매출신장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시어스의 파산은 변신에 실패한 기업의 말로를 생생히 보여준다.

박종구 초당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