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위기의 중년, 생존전략 다시 짜자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입력일 2018-10-15 15:23 수정일 2018-10-15 17:10 발행일 2018-10-1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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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중년은 허리다. 개별가계는 물론 사회전체에도 핵심기둥이다. 가족부양과 사회지지를 떠받치는 주전선수다. 생애임금도 절정을 찍으며 최강의 경제력을 갖는다. 그러니 허리는 적절한 비유다. 단 모든 중년이 그랬으면 좋겠다. 위기의 40대란 말처럼 중년초입부터 흔들리고 삐걱대는 경우가 적잖다. 허리역할의 대전제는 굴곡없이 인생경로를 잘 걸어왔을 때에 한정된다. 적어도 경제활동, 즉 일자리가 불안하면 투명인간일 뿐이다. 아쉽게도 요즘 위기중년이 양산되는 형국이다. 개별적인 인생열위가 있겠으나 심각한 건 구조적인 추락함정이다. 갈수록 심상찮다. 

성글게 말해 순전히 운(運)의 문제다. 안심은 이르다. 아직일 뿐이다. 시차만 있지 누구든 위기중년으로의 포섭망에서 자유롭진 않다. 사회구조가, 회사조직이, 가족구성이 위기중년을 잉태하도록 설계된 탓이다. 비켜설 순 있겠지만 결국엔 충격의 넓이와 깊이로 요약된다. 인구비중마저 상당하다. 100만을 넘기며 사상최대 출산규모를 자랑한 1971년생에 힘입어 한국의 평균연령은 42세에 육박한다. 매년 0.5세씩 올라간다. 광의의 베이비부머(1955~75년생) 1700만명도 모두 40세 중년라인을 넘어섰다. 중년사회 개막으로 이들의 위기일상은 간과하기 힘든 과제일 수밖에 없다.

해법은 없을까. 이대로라면 단언컨대 없다. 중년위기는 복잡다단한 이슈다. 손쉽게 해결될 리 없다. 돈 푼다고 해결될 리는 더더욱 없다. 가족변화, 교육철학, 복지정책, 경기상황 등 그간 한국사회를 지탱해온 제도와 큰 이격을 띈 얽히고 설킨 난제다. 기반구조를 바꾸지 않는한 방법이 없다. 대신 이걸 풀면 많은 관련된 다른 문제도 풀기가 쉬워진다. 관건은 사고체계의 획기적인 발상전환이다. 기존관념과 과거잣대에 얽매이면 곤란하다. 상식파괴의 혁신사고와 지속실천만이 중년위기를 필두로 첩첩산중의 한국병을 치유하는 첫걸음이다.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어렵다를 버릴 때다.

중년위기는 가족부양과 맞물려 극대화된다. 그렇다면 부양구조를 바꾸는 게 근원적이다. 가족부양의 책임을 덜어주자는 얘기다. 왜 다 큰 자녀까지 품어야 하는가. 왜 자녀결혼과 주거마련에 부모지원이 필수인가. 서구기준으론 이해불가의 부담스런 문화다. 옛날엔 통했어도 지금은 아니다. 독립생활은 기본이다. 낳았으니 책임진다만 바꿔도 꽤 수월해진다. 부부상호도 마찬가지다. 중년부부의 가족붕괴는 상대에 대한 과도한 기대·실망에서 비롯된다. 독립인격의 상호존중이 먼저다.

중년위기의 핵심인 경제활동도 비슷하다. 더 벌 수 없다면 덜 쓰는 게 자연스럽다. 이 생각이 없으니 모두 무한경쟁의 서울공간에서 저소득·고비용 스트레스에 함몰된다. 지금 지방은 소멸위기다. 사람이 없어 난리다. 힘든 재취업 대신 지방카드가 더 현실적이다. 자녀부담을 내려놓고 입신양명을 떨쳐내면 지방 거주는 중년에 딱이다. 끊겨버린 허리역할이 보강되면 새로운 가치창출도 가능하다. 균형발전은 부가효과다. 핑계만 앞세우면 대안은 사라진다. 낯선 선택일지언정 물러설 곳 없는 위기중년을 받아줄 스펀지는 지방뿐이다. 자잘한 문제는 공고한 의지를 이길 수 없다. 폐색적 중년위기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 막혔다면 뚫어야, 답답하면 풀어야 좋다. 고전적인 탈출구로는 어불성설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