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리벤지 포르노, 최고 악질범죄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입력일 2018-10-07 16:12 수정일 2018-10-07 16:12 발행일 2018-10-0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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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구하라’들을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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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처음에는 젊은 친구들의 치기어린 사랑싸움처럼 비춰졌다. 연인들 사이에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시끌벅적한 이별 소동이 연예뉴스 면을 장식하는 듯했다. 한때 K팝 시장을 주름잡던 걸그룹 카라 출신의 구하라에 대한 사생활 동영상 사건,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 파문이 사회적 문제로 번지고 있다. 구하라 측의 주장에 의하면 전 남자친구가 두 사람의 교제 당시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헤어진 연인에게 보복할 목적으로 상대방의 동의 또는 인식 없이 일반 공중에게 배포되는 음란물 등을 뜻하는 리벤지 포르노는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의해 처벌받는다. 나아가 이를 빌미로 협박까지 하면 형법상 협박죄나 공갈죄에도 해당한다. 촬영 당시 상대방이 동의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유포행위 자체가 형사상 범죄를 구성한다.

20만명의 청원 동의를 돌파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주장에 따르면 리벤지 포르노의 피해자들은 극심한 2차 피해에 시달리고 있지만 가해자 대부분이 집행유예 처분으로 풀려나기 때문에 근절이 어렵다. 구하라 파문 직후 주말에 열린 혜화역 일대의 시위에는 전국에서 모인 약 6만명의 여성들이 “성차별 사법불평등 중단”, “불법촬영 규제법안 시행”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이 세상에 분노를 드러냈다. 이제는 사법당국의 일상적 몰카 단속과 형사상 처벌만으로는 이런 문제가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과거 성관계 동영상 사건에서 목격했듯 리벤지 포르노물 뉴스가 터지면 남성들은 해당 영상물을 보기 위해 필사적으로 인터넷을 뒤져 공유한다. 설상가상 가해자에 대한 비난보다 여자가 조신하지 못했다면서 피해자에게 경멸의 눈길을 보내기 일쑤였다. 리벤지 포르노 현상을 페미니즘의 과격한 스펙트럼에만 가둘 필요는 없다. 하지만 불법 촬영물을 바라보는 남성들의 편파적인 시각에 많은 여성들이 분노하는 현상은 남녀를 떠나 진심으로 공감해야 한다.

IT, 소셜미디어의 놀라운 발전에 기생해 사생활 불법촬영 및 유포 관련 범죄가 날로 극심해지고 있음에도 이렇다 할 대책 없이 무사태평한 자세로 일관해온 수사기관,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로 재범·상습범 양산을 부채질했던 법원, 이런 범죄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입법을 게을리 했던 국회도 책임을 공히 통감해야 한다.

국내외 리벤지 포르노물이 공유되는 음란물 사이트의 경우 해외 서버를 두고 수시로 IP주소를 변경하면서 운영하기 때문에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당 범죄자를 검거하는 경우에도 구속 비율은 평균 6%에 그치고 있기 때문에 재범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성적 호기심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범죄자들이 존재하는 이상 불법 촬영물에 대한 수요와 공급은 끊이지 않는다. 결국 불법촬영과 관련한 경제적 활동을 근절할 수 있는 환경이 우선적으로 조성돼야 한다. 그 동안 꾸준히 논의되던 불법촬영 관련 수익을 환수하는 입법도 이번 기회에 전격 시행돼야 한다. 아울러 IT사업자, 연예산업의 각종 협회도 연합해 시스템을 구축하고 국민 계몽에 힘쓰며 자체 정화에 나서야 한다.

리벤지 포르노는 사소한 복수가 아니다. 최고의 악질범죄다. 단순히 단속을 늘리고 형량을 높이는 노력만으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 개인 간 애정다툼으로 치부해버리면서 음란물을 관음적으로 즐기는 관행에서 벗어나 범사회적으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국가적인 움직임과 시민 차원의 진솔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