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협상학 관점에서 본 제3차 남북정상회담

정인호 GGL 리더십그룹 대표
입력일 2018-09-27 16:28 수정일 2018-09-27 16:29 발행일 2018-09-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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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GGL 리더십그룹 대표

지난 9월 17일부터 3일간 평양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무엇보다 이번 회담의 이슈는 김정은 위원장의 극진한 의전 그 자체였다. 평양 순안공항의 환대부터 평양시민들은 큰 꽃다발로 환호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 향하는 길에 김 위원장과 카퍼레이드를 하기도 했다. 남측 언론에 최초 공개된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했고 두 정상이 백두산을 함께 오르며 마무리됐다. 요약하자면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 신뢰와 배려를 보인 협상이다.

일반적으로 신뢰는 쉽게 형성되지 않는다. 어느 날 당신의 주머니에 100만원이라는 돈이 있는데 두 명의 친구가 접근해 온다. 첫 번째 친구는 20년 동안 알고 지낸 대학 동기이고 두 번째 친구는 3개월 전에 새로 이사 온 이웃이다. 한 사람만 돈을 빌려 줄 수 있는 조건에서 당신은 누구에게 돈을 빌려 주겠는가? 당연히 첫 번째 친구에게 돈을 빌려 줄 것이다. 그러나 오래 알던 사이라고 반드시 신뢰의 공간이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진정성이 있을 때 신뢰의 공간은 그 의미를 더해 간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진정성이 보이는 협상이기에 그 의미가 크다.

진정성을 고려한 관계의 협상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에도 예외없이 적용됐다. 2012년 미국과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놓고 정면 대결했다. 재선에 성공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아세안에 상당한 힘을 실어줬다. 중국을 포위하고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이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의도였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친중국이었던 미얀마가 미국의 손을 들어주면서 태도를 바꾼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으로선 최초로 미얀마를 방문했다. 양곤에서 테인 세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오바마 대통령은 미얀마의 민주화 개혁을 높이 평가하면서 앞으로 2년간 1억70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세인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얀마를 ‘버마(Burma)’라고 부르지 않았다. 미국은 그동안 나라 이름을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꾼 것이 군사정권이라는 이유로 버마라는 이름을 고집해왔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러한 행동은 미얀마를 실질적 관계국으로 인정하겠다는 의미가 깔려있었다. 오바마의 이러한 행보로 인해 미얀마는 중국이 아닌 미국의 손을 들어주게 됐다.

이기더라도 결국 관계를 고려하지 않으면 실패한 협상이다. 그리스 신화 중 시시포스는 교활한 인물이다. 어느 날 제우스가 아이기나를 유괴하는 것을 목격하고 아이기나의 아버지 아소포스에게 알려 주자 제우스가 이를 노여워해 시시포스에게 죽음의 신을 보냈다. 그러나 시시포스는 죽음의 신을 속이고 가두었다. 군신 아레스가 구출하러 올 때까지 아무도 죽은 사람이 없었다. 죽음의 신이 풀려나자 시시포스는 저승으로 가야만 했는데 그는 이를 예측하고 아내 메로페에게 자신이 죽은 뒤에 장례식도 치르지 말고 시신을 묻지도 말라고 당부했다. 저승의 신 하데스는 시시포스가 죽었는데도 메로페가 장례를 치르지 않자 시시포스 스스로 장례를 치르도록 지상으로 돌려보냈다. 다시 지상의 세계로 돌아온 시시포스는 장수를 누렸다. 그는 죽은 뒤에 신들을 기만한 죄로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벌을 받았는데 그 바위는 정상 근처에 다다르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형벌이 영원히 되풀이된다.

일상의 협상도 다르지 않다. 사람과 사람 간에는 신뢰의 공간이 있다. 한번 채워진 신뢰의 공간은 관계로, 신용으로, 믿음으로 작용된다. 때로는 신뢰의 공간이 평화통일로 가는 믿음으로 작용된다.

정인호 GGL 리더십그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