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여행 떠나기 좋은 때

정인호 GGL 리더십그룹 대표
입력일 2018-08-26 16:21 수정일 2018-08-26 16:22 발행일 2018-08-2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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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GGL 리더십그룹 대표

인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여행을 할 때다. 그러나 바쁜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여행은 남 이야기이자 사치로 치부된다. 최근 소녀시대 유리가 지상파 방송에서 “여행을 가고 싶은데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을 때는 돈이 없어서 여행을 가기가 쉽지 않다”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시간과 돈이 모두 충족되었을 때라면 쉽게 여행을 갈 수 있을까? 문제는 시간과 돈이 아닌 마음의 결핍이다. 결핍이 우리의 사고방식과 마음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에 개봉한 영화 ‘와일드’는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 한 여자와 여행이라는 두 소재로만 스크린을 장식한다. 주인공은 인생의 돌파구를 찾고자 혼자서 4000㎞를 걷는 극한의 도보여행을 한다. 이 영화를 본 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유난히 큰 주인공의 배낭이다. 처음 배낭을 메고 험난한 길을 떠날 때 그녀에게는 집안의 모든 것들이 꼭 필요한 물건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채우고 또 채워 자기 체구만한 배낭을 겨우 짊어지고 힘겹게 한 발 한 발 옮기던 그녀는 쓸모없는 짐이 많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인간의 삶 역시 한번의 여행과도 같다. 평생 한번밖에 할 수 없는 인생 여행이 우리가 가진 전부다. 그래서 우리는 기꺼이 많은 짐을 짊어지기로 한다. 처음엔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언제부터인가 짐이 너무 많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맡은 역할과 그에 따른 짐이 늘어날수록 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개인의 사회적 역할이 커질수록 떠맡아야 하는 짐의 종류도 점점 많아지면서 인생이라는 여행은 그 무게에 짓눌려 고행이 되곤 한다. 짊어진 무게로 인해 웃을 수 있는 여유조차 잃어버린다. 마치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어떻게 그런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까?” 미켈란젤로가 다비드상을 완성했을 때 교황이 물었다. 이에 미켈란젤로가 대답했다.

“간단합니다. 다비드와 관련 없는 것은 다 버렸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림과 달리 조각이란 떼어내면서 만드는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단단한 돌과 마주하면서 3년을 싸웠다. “나는 대리석 안에서 천사를 봤고 천사가 자유로워질 때까지 깎아냈다.” 조각도 삶도 경영도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버려 우리 내면의 진실과 정수를 드러내는 일이다.

뉴욕 맨해튼 중심의 센트럴 파크를 구글 맵으로 보면 사각형의 녹색 공간이 보인다. 맨해튼의 도시설계자였던 로버트 모지스는 설계 도중 자신이 들었던 귀중한 조언을 이렇게 증언한다. “만약 맨해튼의 중심부에 큰 공원을 설계하지 않으면 5년 후에 똑같은 크기의 정신병원을 지어야 할 것이다.”

바쁠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핍’이 아닌 ‘비움’이다. 일이든 재물이든 너무 많이 짊어지면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지쳐버리기 마련이다. 반대로 너무 적게 들고 가면 외톨이가 되거나 위험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으니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너무 많은 고생을 해야 한다. 비웠을 때 우리는 같은 일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비웠을 때야 그 곳에 긍정의 에너지를 채울 수 있다. 만약 인생이 하나의 긴 문장이라면 거기엔 반드시 ‘쉼표’가 필요하다. 그래서 여행은 당장 떠나는 것이다.

정인호 GGL 리더십그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