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부동산 시장 '분노의 역류'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총괄본부장
입력일 2018-08-20 15:25 수정일 2018-08-20 15:26 발행일 2018-08-2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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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완 총괄본부장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총괄본부장

한참 된 영화 중에 ‘분노의 역류’가 있다. 원제는 단순한 ‘역류’(Backdraft)이나 흥행성을 고려해 ‘분노’라는 단어를 붙인 듯하다. 역류라는 현상은 화재 현장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인 것 같다. 불이 붙기 위한 모든 조건은 갖춰져 있으나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불이 나지 않는 밀폐된 공간이 문제다. 소방관이 문을 여는 순간 산소가 공급되면서 순식간에 커다란 폭발과 함께 불길이 치솟는다. 이때 공기가 밀폐된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현상을 역류라 부른다. 소방관의 애환이 너무나 잘 드러나 있는 영화이고, 우리도 소방관 업무의 위험성에 합당한 처우를 받고 있는지 다시 한번 되묻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수도권 부동산 시장은 소방관이 문을 열어주기만 기다리는 밀폐된 공간 같은 기분이다. 불길이 치솟을 준비는 다 되어 있다. 산소만 공급되면 폭발이 일어날 것 같다. 이미 서울 부동산 가격이 상승세로 전환된 것이 그 증거다. 상승폭은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강력했던 8.2 대책에도 불구하고 상승세라는 게 문제다. 8.2 대책 이후 1년이 지난 지금, 대책의 핵심을 이루던 각종 수요억제 정책에 대해 시장은 이미 충분한 내성이 생겼다는 증거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이 또 다시 상승세를 보일 경우 추가 대책을 내놓겠다고 으름장이다. 8.2 대책보다 더 강력한 수요 억제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경고다. 그러나 이미 수요 억제책에 내성이 생긴 상황에서 또 다른 억제책이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잠깐은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또 다시 내성이 생겨날 것이다.

지난 8.2 대책은 급등하는 수도권 집값을 잡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상당한 효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세를 막았고, 1년여 동안 안정된 모습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그 대책에 내성이 생긴 만큼 새로운 대책이 나와야 한다. 부동산 가격 결정 요소는 크게 세 가지다. 수요, 공급 그리고 통화량(또는 금리)이다. 수요 억제책은 단기적인 효과밖에는 볼 수 없다. 중장기적으로 내 집에 대한 수요를 꺾을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이제 통화량과 공급 요소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

통화량은 금리 인상이 어려운 상황에서 대출한도 규제로 묶어 놨다. 부동산 시장으로 돈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부작용이 있다. 정책의 타깃으로 삼은 투기세력보다는 집을 꼭 사야 하는 서민들이 더 타격을 받는다는 점이다. 서민일수록 더 많은 대출이 필요한데 규제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제는 대출 규제를 지속해야 할 것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다음은 공급이다. 부동산 가격 급등에 수요 억제책으로 단기적 대응을 했다면 지금까지 1년 동안 충분한 공급 대책이 뒤따랐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다 하게 공급이 늘어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수요를 충당하지 못하면 가격 상승은 막을 수 없다.

부동산 시장에 이런 격언이 있다. ‘단기에는 정부를 이기는 시장은 없다. 그러나 장기에는 시장을 이기는 정부도 없다’. 단기로는 수요 억제·촉진책으로 부동산 시장을 억제하거나 부양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거니와 동시에 장기적으론 수요에 대한 처방만으로는 효과가 없고 공급 조절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하루빨리 부동산 공급 대책을 재점검하고 새로운 대책을 내놔야 할 것이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총괄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