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정으로 더위 피하는 철강 현장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입력일 2018-08-19 16:55 수정일 2018-08-19 16:58 발행일 2018-08-2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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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역사적으로 관측 사상 최고의 더위는 1922년 9월 13일 멕시코 프트시 산 루이스에서 기록된 섭씨 52도이다. 이 정도 날씨면 일상적인 활동이 어렵다. 최근 한국 날씨도 섭씨 40도를 육박하면서 더위 먹은 환자가 급격히 늘었다.

최근 친구가 보내온 “대꾸할 기운도 없다”는 카톡의 이모티콘이 너무 기발해 웃어 보지만 올해는 유난히 덥다. 옛날에도 더위는 극심했던 모양이다. 소설가 유주현은 그의 작품 ‘태양의 유산’에서 “삼복 허리의 햇발은 불길을 머리에 끼얹는 것 같이 뜨거웠다”고 하고, 염상섭은 “대지가 도가니 속처럼 푹푹 찌는 듯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더운 여름이 되면 신문 지면에는 ‘이열치열의 현장’이란 기사가 실리고, 방송 화면에는 쇳물 끓이는 장면이 단골로 등장한다. 사실 철강제품 생산 현장의 실내 온도는 평균 50도(섭씨)를 오르내린다. 더 이상 온도를 내릴 수도 없다.

이런 생산현장에서는 10분만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그러나 과거처럼 뜨거운 생산현장 속에서 맨몸으로 일하던 환경은 거의 사라졌다. 생산라인 곳곳은 완전히 자동화됐고, 현장 근무자들은 생산라인 중간쯤에 설치된 컨트롤 룸에서 모든 작업을 진행한다.

철강공장의 현장을 방문해보면 작업자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곳이 많다. 공장 바닥은 유리알처럼 깨끗하고, 마무리 단계의 공정에서나 작업자 한두 명이 보일 뿐이다. 다만 쇳물을 끓이는 제선, 제강 분야에서는 작업자의 확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설비 옆에서 5~10분 정도의 수고를 해야 한다.

쇳물의 온도는 색깔로 구분된다. 이 쇳물이 만들어 내는 원초적인 색깔은 다채색이다. 섭씨를 기준으로 흰색에 가까우면 1800도가 넘고, 아이보리에서 노란색까지는 1200도 정도 된다. 붉은 색깔은 쇠가 물렁해지는 순간을 의미하며, 약 1000도이다.

철근 제품이 완성되려면, 붉은 색깔을 띠는 쇳덩이(반제품)를 트위스트 하듯 비틀면서 압연라인으로 진입시켜 ‘쿨링베드’(완제품을 식히는 장소)까지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쿨링베드에 떨어진 완성품들은 마치 검은색에서 빨간색까지의 물감을 단계적으로 뿌려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한다.

쇳물에서 10㎜의 가는 철근이 되기까지 쏟아낸 힘의 원천은 자동화된 설비와 기술의 융합이다. 작업자들이 맨몸으로 쇳물을 끓이는 장면은 중국이나 베트남, 또는 인도네시아 같은 후발 철강공업국가에서나 볼 수 있다.

철강기업들은 혹서기가 되면 생산 활동을 접고 보수 공사를 하는 것이 통례적이다. 1970~80년대의 노후된 전근대적인 설비는 국내 철강기업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의 수작업 방식도 이미 컴퓨터와 로봇으로 전환됐다. 그래서 현장 작업자들이 땀을 빼는 시간은 은빛의 철강재 완성품을 운송할 때부터 발생한다.

여름철 철강 공장의 휴식시간은 그 옛날 광주리에 담긴 음식을 들판으로 날랐던 농촌의 목가적인 모습과 흡사하다. 복날에는 잘 끓인 삼계탕을 제공하고, 관리직 사원들이 직접 조를 편성해 냉커피와 수박을 들고 철강 현장을 찾아가는 기업문화가 그것이다. 철강현장의 여름은 더위-쇳물-땀으로 범벅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사원들 스스로 정(情)을 나눠주는 기업문화가 꽃피우는 계절이라고 해야 알맞다.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