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먹방 사용설명서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입력일 2018-08-02 15:44 수정일 2018-08-02 15:45 발행일 2018-08-03 19면
인쇄아이콘
20180702010000424_1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정부가 발표한 먹방 규제 가이드라인에 대한 후폭풍이 폭염만큼 뜨겁다. 비만에 대한 대책은 항상 논의되어 왔지만 먹방에 대한 규제는 이번이 처음이다. 음주, 흡연에 대한 각종 광고나 방송 규제조치처럼 먹방에 대해서도 진작에 메스를 가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비만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은 도외시한 채 규제만능주의에 따라 애꿎은 먹방만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먹방과 비만과의 상관관계를 살펴본다면 과연 먹방에 대한 규제가 비만이나 기타 부작용에 대해서 실효성이 있는 대책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자극적인 ‘먹방’ 이 식욕을 자극해 비만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음식 프로그램의 방영에 따라 관련 음식 주문량이 증가한 사례들도 있다. 심지어 영국의 어느 유튜브 동영상에서 몸에 해로운 정크 푸드를 먹는 ‘먹방’을 어린이 피실험자들에게 보여주고 초콜릿, 젤리 등을 간식으로 줬더니 동영상을 보지 않은 아이들보다 칼로리 섭취량이 높게 나타났는 연구결과도 있다. 음식 콘텐츠 노출 시 보상중추를 자극하고 과다한 식탐을 유발해 비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먹방은 대리만족 효과를 부를 뿐 막상 식욕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무시할 수 없다. 경희대 조리외식경영학과에서 2017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리만족’이나 ‘오락’이 시청 동기인 경우 ‘식탐’이나 비만에는 의미 있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먹방이란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대리 만족하고 그 방송의 오락적인 면에 치중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술이나 흡연처럼 먹방에 대해서도 규제가 필요한지에 대한 반론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술, 흡연과 암에 대한 상관관계가 입증된 이후 관련 노출장면을 규제한 것처럼 먹방에 대한 규제도 비만을 유발한다는 과학적 증명이 선행돼야 한다. 단순히 먹방이 비만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추정만으로는 정부가 나서서 먹방에 대한 규제를 논의하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워야 한다. 시청자의 볼 권리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국가비만관리 종합대책’에 포함된 ‘폭식조장 미디어·광고 가이드라인’과 관련해 보건복지부는 모든 먹방을 규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짜장면 30그릇 먹기’, ‘소주 15병 마시기’ 같이 일부 인터넷방송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자극적인 프로그램들에 대한 규제에 초점을 맞춘다고 밝혔다.

먹방은 기본적으로 콘텐츠산업의 재료를 제공한다. 먹방을 통해 즐거움과 유익함을 더많이 제공받을 수 있다면 다른 유해성 콘텐츠처럼 무작정 규제할 것은 아니다. 결국에 먹방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수요미식회 등의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알찬 정보와 적절한 가이드라인은 국민 식생활과 건강 증진에 기여하고 있지만, 유튜버의 관심끌기용으로 제작된 엽기적인 동영상들은 식탐에 취약한 많은 이들에게, 특히 분별력을 아직 갖추지 못한 어린이들에게는 분명 독이 될 것이다. 하지만 모든 규제는 더욱 독이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한계와 장막을 치면 칠수록 다양성과 존엄성은 점점 더 사라지게 된다. 먹방 규제를 최소화하되 운동 방안을 포함하여 비만에 대한 더욱 직접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