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철강기업, 혁신 멈추면 끝장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입력일 2018-07-16 16:04 수정일 2018-07-16 16:05 발행일 2018-07-1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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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정부 투자로 성장한 포스코의 나이는 50세. 공기업-민영화-은행관리-민영화 과정을 반복하면서 현대차 그룹의 일원이 된 현대제철은 65세. 창업 이래 3세대 경영을 이어가는 유일한 철강기업 동국제강은 64세다. 이 밖의 많은 철강기업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40~60여년의 역사를 지닌 국내 중견철강기업들은 거의 맨손으로 사업을 시작해 국내 철강산업을 세계 5위권으로 성장시키면서 ‘생존의 강’을 잘 건너고 있는 중이다. 철강기업의 숙명은 신흥 철강국가에 왕좌를 넘겨줘야 한다는 점이다. 유럽-미국-일본-한국-중국 등으로의 강자 이동을 지켜보면서 ‘철강은 동진한다’는 자조적인 용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지금 철강기업들은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전기료 인상 조짐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의 과징금 발동, 보호무역 등 철강경영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 때문이다.

미국의 뉴코는 독특한 철강 제조 문화와 기술력으로 성공한 정통 미니밀 메이커이다. 이 회사의 본사는 작은 치과병원만 하다. 이 회사의 임원들은 베니어판으로 만든 칸막이 사무실에서 현장의 근로자와 똑같은 열정을 갖고 일한다. 반면 1980년대에 몰락한 베들레헴의 21층짜리 빌딩은 대부분 임원용 사무실이었다. 회사 차량으로 자녀를 학교까지 태워주고, 세계적 수준의 임원용 18홀 골프코스를 무료로 제공했다.

일본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동경제철 본사 사무실은 허름하다. 모 철강기업 일본 지사장이었던 강국씨는 출근시간에 지하철 안에서 가끔 동경제철 사장을 만났다고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유를 묻자 “시간도 절약되고 이용도 편한데 굳이 승용차 탈 이유가 없다”고 하더란다.

뉴코(크로포트빌 공장)의 현장 근무자들은 중식시간에도 샌드위치를 입에 물고 일한다. 안전관리를 제쳐 놓은 양 뛰면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 인센티브 때문이다. 정해진 근로시간에 더 많은 생산성을 이룬다는 것이 뉴코의 장점이다. 52시간 근로를 정착시키면 수입이 대폭 줄어든다는 한국적 사고방식과는 확연히 다르다.

뉴코의 전 회장 켄 아이버슨은 자서전 ‘수수한 이야기(Plan Talk)’에서 이렇게 말한다. “회사의 계층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거듭 특권을 부여하고, 진짜 일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 특권을 과시한다. 그러나 종업원들에게는 지출을 줄이고 수익을 올리라고 호소하면서 종업원들이 왜 움직이지 않는지 궁금해 한다.”

국내 항공사 오너들의 갑질과 비슷하다. 뉴코 임직원들은 ‘쓰리 타원’을 규율처럼 삼고 있다. ‘열정’(계급 차별은 없다), ‘세계 최고’(저 비용의 철강제조 문화정착), ‘경제적 기준’(완제품 생산과 톤당 수익에 의함)이다. 뉴코는 세계철강협회가 해마다 발표하는 순위에 미국 1위 철강기업으로 등장한다.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철강업의 본질은 ‘혁신’이다. 예술가를 초청해 신제품을 설명하는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의 기발한 아이디어, 세상에 둘도 없는 빌딩을 지어 달라고 했던 홍콩 상하이은행 빌딩 건축주의 주문처럼, 국내 철강기업들은 수요자가 원하는 것을 지금 당장이라도 제공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기존의 제품을 지속적으로 생산해서는 미래가 없다. 유니크한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임직원 모두 창업자 정신으로 문제를 파헤쳐야 한다. 타성부터 과감히 제거하고, 평지풍파를 일으켜서라도 혁신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다.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