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캥거루 기업' 없는 공정 생태계로

이해익 경영 컨설턴트
입력일 2018-07-12 15:53 수정일 2018-07-12 15:54 발행일 2018-07-1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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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익 경영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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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만차씨는 젊은 엘리트 사원이다. 병역필·명문대학을 마친 후 대망의 대기업에 당당히 합격했다. 몇 주간의 신입사원 연수를 마친 후 구매부에 배치됐다. 마침 회사의 핵심부품중 하나를 구매하는 담당자가 됐다. 시간을 쪼개면서 핵심부품 시장을 폭넓게 조사하고 전문업체를 깊이 파고들었다. 드디어 높은 품질과 최적 가격의 전문업체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야심찬 기획서를 꾸몄다. 그런 후 팀장을 조용히 만났다. 

“팀장님! 정말 회사를 위해 탁월한 핵심부품 공급업체를 발굴했습니다.”

팀장은 놀란 표정으로 기획서를 받아 꼼꼼하게 읽은 후에 고개를 들어 라만차씨를 빤히 바라봤다. 라만차씨는 감격에 찬 팀장의 격려를 고대하며 귀를 기울였다.

“이건 뭔가.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는 건가. 개문읍도(開門揖盜)하나?”

개문읍도란 ‘긁어 부스럼’이란 사자성어다. 라만차씨의 좌절은 처절하게 시작됐다. 해당 핵심부품은 총수와 새롭게 사돈이 된 이의 조카가 운영하는 기업에서 일괄 구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 회사에 일감몰아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총수와 그 자녀들까지만 관계기업 자료를 챙겨본 라만차씨의 불찰(?)이었던 것이다.

일감몰아주기는 원래 총수와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로 문제가 됐다. 그래서 꼼수 상속과 편법경영승계에 따른 사회적 비판이 거셌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문제는 라만차씨의 경우처럼 조직구성원의 창조적 기강을 좌절시켜 노예화하는 기업문화를 만연시키는 데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더 강조하는 싶은 것은 해당업계의 산업생태계를 초토화시켜 결국은 국제경쟁력의 약화를 불러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정위에서 아직도 만연된 자산규모가 큰 재벌들의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발표했는데 그 실천 근간이 될 정책,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두고 기대가 크다.”

2012년초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벌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의제로 올리면서 한 말이다. 이후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가 됐다.

그런데 우리나라 재벌 계열사 3곳 중 하나꼴로 일감 절반 이상을 모기업이나 계열사에 의존하는 이른바 ‘캥거루 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재벌닷컴은 2015회계연도 매출을 분석한 결과 일감몰아주기 즉 내부거래비율이 50% 이상인 계열사 수는 전체(926곳)의 28.2%인 261개사로 집계됐다.

지금까지는 총수일가 지분율이 20%(상장사는 30%)이며 내부거래액이 200억원 이상이거나 연매출 12% 이상이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이 됐다. 그러나 이제 상장사 기준도 20%로 낮추고 또 5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도 규제대상에 포함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현대차그룹의 이노션, 삼성그룹의 삼성웰스토리나 제일패션리테일 등이 규제 사각지대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노션은 총수일가 지분율이 29.99%이고 한진칼은 25.6%다. 삼성웰스토리나 제일패션리테일은 삼성물산이 100% 보유하고 있는 비상장회사다. 모쪼록 자발적으로 캥거루기업을 없애 해당 기업은 물론 산업 생태계가 활력을 찾아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 바란다.

이해익 경영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