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아날로그 할머니'가 뿔났다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입력일 2018-06-14 15:51 수정일 2018-06-14 15:53 발행일 2018-06-1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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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누님은 디지털에 약한 ‘아날로그 할머니’다. 집안 살림만 하다가 70대 중반이 됐으니 인터넷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다. 인터넷으로 간단히 처리 할 수 있는 은행과 관공서 일도 직접 찾아가야 해결이 되는 ‘아날로그 세대’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아들 내외가 누님에게 최신형 휴대폰을 선물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누님은 새 스마트폰이 마음에 들어 사진도 찍고, 카톡도 하면서 자주 문자를 보내오셨다. 그리고 한 달 후 누님은 폭탄 전화요금 고지서를 받았다. 와이파이가 연결되지 않는 곳에서 카카오톡이나 동영상 등을 시도 때도 없이 열어 본 결과였다.

생각지도 않은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나서야 적절한 스마트폰 사용 방법을 알아냈지만, 최근 ‘아날로그 할머니’의 불만 섞인 언성이 높아졌다. “세상에, 5년 동안이나 쓰지도 않는 인터넷 요금을 내고 있었다는 것이 말이 되냐.”

7년 동안 거주하던 집을 팔고, 새집으로 이사하면서 인터넷 업체를 변경했는데, 계약이 종료된 줄 알았던 두 군데 인터넷 회사에 비용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인터넷은 초등생 손주의 전유물이었다. 원인은 새로운 인터넷 회사가 계약과 동시에 기존 회사와의 계약을 종료한 것으로 알고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에 있었다.

근 5년 동안 이전 인터넷 회사가 받아간 비용은 100만원이 넘었다. 누님은 필자에게 항의를 부탁했다. 꼼꼼히 따져보니 해지 통보를 못한 사용자의 불찰이어서 누님의 부탁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인터넷의 신규 가입이나 해지통보는 모두 ARS 방식이었다.

문제는 ARS 시스템이 일방통행이라는 점이다. 순서에 따라 처리하는 시간은 지루할 정도로 길었다. 기다리는 동안 느닷없이 자사 광고캠페인이 등장하고, 그렇게 5~6분 지나고 나서야 “통화량이 많아 다시 걸어 달라”면서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업무량이 적은 시간에 세 번, 네 번 다시 통화를 했으나 결과는 똑같았다. 다시 수차례씩 거의 일주일 동안 ARS를 시행했지만 인내심은 바닥이 났다.

아날로그 방식의 해결책이 필요했다. 인맥을 동원해 고위층 임원과 통화를 했다. 자초지종을 전달하자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담당자가 전화를 드릴 것”이라고 했다. 퇴근 시간 무렵, 담당자가 전화를 줬다. “왜 담당자인 저에게 전화를 하시지 윗분께 하셨느냐”는 반응이었다. 큰 야단을 맞은 모양이었다.

어느 곳에도 담당자의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는 없었다. 어찌 됐든, 해결책이 궁금했다. “소비자께서 잘못한 결과이긴 하지만, 고객님의 사용 기록을 1년 동안만 보관하기 때문에 부탁하신 임원님을 생각해서 일부 비용을 반환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결국 20만원을 동냥 받듯이 돌려받았다. 일주일동안 ARS와 씨름한 생각을 하면 기가 찼다. 누님은 그만 하자고 만류했다. ARS방식은 분명 디지털 시스템이지만, 사용자의 불편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해결해야 되는 아이러니는 크게 잘못된 일이다.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슬로건은 이미 ‘존 콜린스’에 의해 잘 알려져 있다. 기업도 시민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 박혀 있다면, 소비자의 불찰일지라도 부당한 이득이 확인되는 즉시 소비자에게 보상하는 태도를 보여야 ‘위대한 기업’으로 갈 수 있다.

“위로금조로 드립니다”는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 말은 소비자를 봉으로 여길 때나 쓴다.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