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제사보다 젯밥, 프로야구 뒷돈 트레이드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입력일 2018-06-03 16:38 수정일 2018-06-03 16:38 발행일 2018-06-0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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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국내의 여느 프로 스포츠와 달리 경기장 객석을 꽉꽉 채우는 최고 인기종목인 프로야구가 승부조작, 성폭행에 이어 뒷돈 추문에 휩싸였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008년 출범한 넥센 히어로즈가 최근 10년간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뒷돈을 챙겨온 사실을 발표했다. 히어로즈가 소속 선수들을 타구단에 넘기면서 KBO에 신고하지 않거나 액수가 다른 뒷돈 트레이드를 저지른 것이다. KBO 조사에 따르면 넥센은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진행한 8개 구단(SK제외)과의 트레이드 23건 가운데 절반이 넘는 12건에서 131억5000만원을 몰래 받았다. 이렇게 챙긴 뒷돈을 히어로즈의 운영자금으로 충당했다는 구단 측의 항변보다는 구단 관계자들의 개인적인 착복 혐의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프로야구에서 현금 트레이드 자체는 허용된다. 2008년 현대 유니콘스 인수 이후 자금난에 시달렸던 넥센은 현금 트레이드로 구단의 주 수입원을 마련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수 팔기’가 도를 넘어 사회적 윤리적 비난을 받게 되자 KBO는 2010년 넥센의 일부 현금 트레이드를 승인하지 않기도 했다. 그럼에도 최근까지 히어로즈의 뒷돈 행태는 조직적으로 지속돼 왔다.

뒷돈 사태는 단순히 히어로즈만의 문제가 아니다. 불법에 공조한 다른 구단들의 도덕적 해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단기간의 전력 보강, 성적 향상을 위해 당장 돈이 급한 구단에게 뒷돈을 주저없이 건네고 선수를 넘겨받은 상대 구단들의 계산상 이해관계는 딱 맞아떨어졌다. KBO는 뒷돈 트레이드의 일부 금액을 야구발전기금으로 환수조치했지만 추가로 밝혀진 뒷돈 거래액에 대해서 고민 중이다. 뒷돈 전액을 KBO가 강제로 환수할 근거는 없다. 하지만 히어로즈 뿐 아니라 공범 구단들로부터 기만당한 팬들의 실망과 분노는 극에 달해있다.

현재 변호사 1명, 회계사 1명, 전직 수사관 2명과 KBO 실무진 등으로 구성된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가 시작됐다. 조사 이후 상벌위원회에서 연루 구단들과 관계자들의 징계 여부와 수위가 결정될 예정이다. KBO 규약에 따라 벌금부터 회원 자격 정지(경영권 박탈)까지 가능하겠지만 KBO가 기본적으로 각 구단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성격을 지난다는 점에서 극단적인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이 모든 불상사는 KBO의 방만한 관리에 기인한다. 그동안 구단들이 KBO에 임의로 제출하는 계약서들은 얼마든지 조작 가능하기 때문에 금전 수수 영수증, 통장거래 내역서 등 객관적인 증빙자료가 필요하다. 메이저리그처럼 현금 트레이드의 상한선을 두는 방안도 제시되는 가운데 뒷돈 트레이드 파문은 자유계약(FA) 및 외국인 선수 계약의 투명성까지도 요구하고 있다. FA와 외국인 선수 계약의 경우 세금 대납 등 더 큰 규모의 불법적인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KBO에 수사권은 없다. 하지만 자정의지만 있다면 상설 감독기관 운영, 외부 수사의뢰 등 얼마든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팬심은 정직하고 정확하다. 승부조작, 뒷돈거래가 만연한 스포츠리그들의 추락 흑역사들은 언제든지 되풀이될 수 있다. 제사보다는 젯밥에 눈이 멀었던 구단들의 소탐대실에 지금 한국 프로야구는 9회말 투아웃 만루 위기 상황에 빠졌다.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