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삼성·애플 특허 공방의 교훈

문송천 카이스트 교수
입력일 2018-05-30 15:33 수정일 2018-05-30 15:33 발행일 2018-05-31 23면
인쇄아이콘
20180305010000746_1
문송천 카이스트 교수

최근 삼성이 애플에 또 한 방 당하는 결과가 나왔다. 무려 7년 간이나 지루하게 끌어 온 삼성과 애플 특허 공방에 관한 미국법원의 1심에서 삼성은 애플에 약 6000억원을 지급하라는 배심원단 평결이 나왔다. 특허 공방의 대상 물건은 10년 전 출시된 초창기 스마트폰인 삼성 갤럭시 S와 갤럭시 S2다. 지금에 와서 보면 진부한 모델이기는 하나 이 공방의 핵심이 디자인 특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디자인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의 명운이 소프트웨어로 좌우될 것이라는 점에 유념한다면 이번 평결이 삼성의 향후 실적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국내 금융권 분석에 의지하여 안심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어느 모임자리에서 기계 대 인간을 언급하는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됐다. 대화 중에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가 ‘AI’ 였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기지 못하게 하려면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그렇게 하기는 아마도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오간 대화였다. 여기서 보통 즐겨 쓰는 AI라는 말은 각종 소프트웨어를 총칭하는 뜻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 학문적으로 따져보면 그런 관계가 전혀 아니건만 일반인들은 그런 배경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름대로 AI와 소프트웨어 간의 관계를 편의에 따라 마음대로 해석하고 있었다. 그러나 AI라고 했든 소프트웨어라고 했든 그것이 가리키는 바는 확실히 똑같은 한 가지인 것이다. 다름아닌 데이터와 그 데이터를 대상으로 돌아가는(작동되는) 알고리즘이다. ‘알고리즘’이란 용어가 혹시 거슬리면 ‘문제해법’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삼성이 디자인, 즉 소프트웨어 쪽에서 애플에 한방 먹었다는 말은 만약 삼성이 애플에 그걸 되갚고 싶다면 소프트웨어 쪽에서 승부를 낼 수 밖에 없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향후의 승부처는 데이터의 질과 알고리즘의 질과 같은 질적인 면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기본으로 돌아가보면 디자인과 같이 눈에는 잘 띄지만 지엽적인 부분보다는 소프트웨어와 같이 가시화하기는 힘들지만 광활히 넓은 세계에서 애플을 앞서나갈 생각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앞서나가는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인가. 스마트폰 소비자의 시각에서 보면 삼성은 소프트웨어 쪽에서는 애플의 맞수가 되기에는 어림도 없다는 분석이 여전히 지배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삼성이 무슨 수로 역전시킬 수 있을 것인가.

애플은 이번 평결로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감이 팽배해 있다. “이번 사안은 비단 금전적인 문제 이상의 것”이라는 애플 측 반응을 보면 스마트폰 시장에서만큼은 리더의 자리를 넘볼 생각은 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로 들리기도 한다. 삼성을 영원히 추격자의 지위에 묶어두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스마트폰 소비자 심리 속에 이게 각인되는 날에는 애플을 추월하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삼성은 IT 전반을 종합적으로 보면 이미 애플을 추월한 상태다. 최근에는 난공불락에 가까웠던 인텔까지도 드디어 추월해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쾌거에서 일등공신은 반도체였다. 스마트폰은 아니었다. 반도체는 하드웨어의 대명사다. 따라서 삼성이 애플을 진정으로 따돌렸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그 답은 어디서 나와야 하는지 뻔하다. 소프트웨어 ‘질의 삼성’. 이게 답이 아니겠는가.

문송천 카이스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