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서민에 턱없이 높은 은행 문턱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
입력일 2018-05-24 15:51 수정일 2018-05-24 15:53 발행일 2018-05-2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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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사진(이민환)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

어느 순간부터 은행에 대출을 연장하러 갈 때마다 매년 자동갱신이 가능했던 신용대출이 ‘더 이상 연장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가계소득은 늘어나지 않는데 교육비·생활비 등으로 지출은 매년 늘어나 금융권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가계부채 규모가 위험수위에 도달했다는 걱정스러운 언론 보도들이 쏟아지며 정부가 다양한 대출규제 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임대업자에 이자상환비율(RTI), 소득대비대출비율(LTI)을 도입한 데 이어 담보대출뿐만 아니라 신용대출을 포함한 원리금상환액을 연 소득과 비교해 대출한도를 정하는 총체적 상환능력비율(DSR)도 도입했다. 하지만 주택 마련, 자녀 교육비 등으로 지출할 곳이 많은데 수입은 제자리인 서민들 입장에서는 금융기관의 문을 두드려야만 해 답답하기만 하다. 물론 금융당국의 입장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계부실이 자칫 금융기관의 부실로 전이되는 경우 금융시장의 혼란이 초래되는 시스템 위기로까지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강도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을 강도 높게 죄다 보니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에 실패한 청년 미취업자, 직장을 잃고 가계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중장년 실업자들은 당장 생활자금 마련이 걱정인 신세다. 특히 이들로부터 작년 11조2000억원의 수익을 올린 은행은 여전히 높은 문턱일 수밖에 없다. 저신용자가 대부분인 서민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에게 조금이나마 자금을 빌려주는 대부업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대부업 이용자 중 7~10등급의 저신용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75.6%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들이 얼마나 대부업 자금에 목말라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반면 은행 신용대출 이용자 중 7~10등급 이용자는 전체의 4.1%에 불과하다.

금융당국은 상호저축은행의 과다한 고금리대출 편중과 상대적으로 높은 대출이자율을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뛰어들지 않는 이들 저신용자 시장에 있어서 저축은행과 대부업은 사막의 오아시스일지도 모른다. 비은행금융기관의 저신용자에 대한 과다한 금리부과를 비판하려면 조달비용과 정보 등의 측면에서 이들에 비해 훨씬 우위에 있는 은행이 이들 시장에 진입해야 한다.

저신용자 대출이 중심인 대부업체의 신용대출연체율이 2017년 6월 기준 4.8%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이 시장 또한 은행이 진입하기 두려워해야 하는 시장은 아니다. 은행의 문턱을 저신용자까지 낮춰 이들이 상대적으로 대부업 등 여타 금융업보다 낮은 금리로 생활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

금융당국이나 은행은 이들 저신용자가 신용등급이 낮아 부실시 은행의 건전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7등급 이하의 신용대출 비중은 2017년 9월 기준 전체의 25.3%에 불과하다. 이를 모두 은행이 취급한다고 가정하고 이중 약 5% 정도가 연체한다고 계산해도 은행의 대손상각액은 최대 약 1조2000억원에 불과하다. 이는 작년 은행권 전체 순이익의 10%에 불과하다. 은행이 마음만 먹으면 생활비로 인해, 어느 금융기관도 상대를 해주지 않아 대부업이나 저축은행의 고금리대출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저신용자에게는 가뭄의 단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