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칼의 도시' 명품 스토리텔링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입력일 2018-05-17 15:34 수정일 2018-05-17 15:36 발행일 2018-05-18 23면
인쇄아이콘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주방용 칼의 수요는 엄청나다. 세계인들에게 사랑 받는 명품 칼은 대부분 철강 산업이 앞선 국가에서 생산된다. 독일의 헹켈, 보커 브랜드는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할 만큼 인기가 높다. 영국의 세필드, 일본의 세키 지역 역시 명품 칼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주방용 칼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쌍둥이 칼은 독일 헹켈사의 제품이다. 헹켈은 1731년 설립된 장수기업이다. 헹켈이 소재한 졸링겐시(市)에는 크고 작은 기업들이 나이프 제조 기술과 노하우, 아이디어를 서로 이전하는 클러스터파워를 형성하며 세계 칼 시장을 주도해왔다.

헹켈은 독일의 대표적인 미텔슈탄트(Mittelstand)다. 독일 특유의 장인정신과 기술력을 겸비한 작지만 강한 기업이란 의미다. 헹켈이 미텔슈탄트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졸링겐에서 좋은 철이 많이 생산된 덕분이다. 그 원산지는 티센크루프 등의 철강기업이다.

헹켈의 강점은 전통적인 무쇠 칼의 절삭력과 녹이 안 슬고 위생적인 스테인리스의 장점을 배합해 단단하면서도 날카로운 명품 칼을 만들어 내는 기술력에 있다. 헹켈의 쌍둥이 칼이 명품으로 이름값을 하는 데는 전략적인 스토리텔링과 행정관청의 아낌 없는 지원이 한몫했다. 헹켈의 스토리텔링은 창립 285주년 기념행사에서 잘 드러났다.

“다마스커스 107은 철강야금기술의 결정판입니다. 뮌스터브리지의 강철 부품을 교체하던 중 우연히 떨어진 소량의 철을 녹여 단 285개의 나이프만 생산했습니다.”

한 자루에 300만원이 넘는 한정판 주방용 칼을 출시하면서 헹켈이 내놓은 광고 카피다. 한정판 칼의 표면에는 고유의 물결무늬가 새겨져 있다. 칼날 20㎝, 손잡이 13.5㎝에 불과한 285개의 칼은 소장 가치가 높아 전세계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헹켈이 1897년에 완공된 437m에 불과한 ‘뮌스터브리지’를 스토리텔링 소재로 삼은 이유는 뮌스터브리지가 파리의 에펠탑(1889년) 못지않은 철 구조물이며, 독일에서 가장 높은(107m)곳에 설치된 당대의 훌륭한 철도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근대 독일의 황제, 빌헬름의 이름을 처음 붙인 다리였다는 점을 활용해 독일인들의 자존감을 환기시켰다. 107의 숫자는 뮌스터브리지의 높이를 의미한다. 생산제품을 285개로 한정한 것은 헹켈의 창립 연령에 맞추기 위한 것이다.

졸링겐도 헹겔의 명성에 한몫했다. 도심에 칼 박물관을 설치하고, 박물관 뜰에는 나이프, 스푼, 포크, 가위 형상의 다양한 조각물을 전시하는 등 졸링겐을 칼의 도시로 브랜드화했다. 그 덕택인지 헹켈은 16만여명의 지역 시민을 먹여 살릴 정도로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고 정주영 회장이 500원 지폐에 인쇄된 거북선을 보여주면서 “한국은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1500년대에 거북선을 만들어냈고, 이 거북선으로 일본과의 전쟁에서 이겼다. 한국의 잠재력이 바로 이 돈 안에 담겨있다”고 했던 일화는 역사적 사실을 스토리텔링으로 이끌어내 영국으로부터 조선소 건립 차관을 끌어낸 멋진 아이디어였다.

“졸링겐에 가거든 칼을 사와야 한다”는 입소문은 달콤한 스토리텔링이 거드는 탓이다. 이제라도 기업마다 독자적인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생산제품의 가치를 드높여야 한다.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