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4·27 남북 정상회담에 부쳐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총괄본부장
입력일 2018-04-23 13:00 수정일 2018-04-23 13:01 발행일 2018-04-2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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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완 총괄본부장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총괄본부장

처음 ‘운전자론’이라는 생경한 단어를 들었을 때 속으로 웃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해야지 말이나 되는 이야기냐.’ 그런데 2018년 김정은 위원장의 ‘핵무력을 완성’했다는 신년사를 보면서 아차 싶었다. ‘핵무력을 완성했으니 이제 대화에 나서겠구나.’ 아니나 다를까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그때서야 운전자론이 현실성이 없는 꿈같은 이야기만은 아니었구나하고 필자의 식견이 좁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한반도 정세는 완연한 봄바람이다. 평창에서까지만 해도 미국은 긴가민가 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남한이 전한 북한의 메시지를 받아들고서는 드디어 미국의 태도도 바뀌기 시작했다. 바로 몇 일전까지만 해도 코피전략을 언론에 흘리던 미국이었다. 이제 트럼프는 한반도 종전 및 항구적 평화체제 완성을 위해서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하겠다고 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오히려 일본이다. 그동안 일본은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서 줄곳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다가 눈앞에 닥쳐온 ‘재팬 패싱’의 현실에 허둥지둥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북-남-미 대화에 한자리 끼어들려고 하는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제 오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개최된다. 이번 정상회담은 역대 어느 정상회담보다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종전 선언과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지상명제를 논하는 회담이기 때문이다. 합의에 실패해서도 안 되고, 최선이 아닌 차선의 해결책을 만들어내서도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고려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논의하는 평화체제의 항구성이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도 항구적인 평화이어야 하고, 남한을 위해서도 항구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그동안 남과 북은 박정희대통령 시절 7.4 공동성명을 필두로 하여 6.15, 10.4까지 수차례에 걸쳐 공동 선언을 했다. 그렇지만 그때 잠시 반짝하는 효과에 불과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시작된 남북간의 경제·사회·문화적 교류도 때로는 남한에 의해서 또 때로는 북한에 의해서 결국은 문을 다시 걸어닫은 채 10년 넘게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평화체제는 항구적이라고 할 수 없다. 평화체제의 항구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남한과 북한 간의 엄격한 협정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담보할 국제사회의 지원도 필요하다. 미국과 중국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일본과 러시아와도 긴밀하게 협의를 해야 하며, 더 나아가서는 UN의 보증을 구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둘째, 모든 정치적 협상이 마무리되고 나면 국제사회 차원의 북한의 부흥개발을 위한 경제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CVID 비핵화가 전제가 되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경제력 격차가 너무 크게 나는 상태에서는 평화체제의 항구성을 담보하기는 어렵다. 북한의 1인당 GDP를 1000달러로 보면 남한과 30대 1이다. 이런 격차 하에서 평화체제 항구적 지속은 난망하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담보하는 1인당 GDP 허들은 3000달러이다. 개도국을 넘어서는 1인당 GDP는 1만달러이다. 남과 북의 경제력 격차도 어느 정도 해소하고 북한 주민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담보하는 수준이라 함은 당연히 1차 3천달러, 2차 1만달러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북한의 부흥개발 로드맵으로 중기목표 3000달러, 장기목표 1만달러를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이와 같은 목표 달성을 위해서 북한을 둘러싼 이해당사국들인 남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는 물론이고 국제사회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마지막으로 남북한 자유왕래의 기초를 닦아야 한다. 자유왕래는 경제적으로도 중요하지만 남북간 동질성 회복이라는 관점에 비추어 볼 때 그 어느 것보다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필자는 6.25 당시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지역인 철원-김화지구에 파일럿 차원의 ‘자치중립특구’를 하나 운영해볼 것을 제안한다. 자치중립특구는 미국과 중국의 보장 하에 UN과 같은 중립기구에서 운영을 담당하도록 하여 남과 북의 국내 정치적 요소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철원-김화 자치중립특구는 제조업 중심의 개성공단과는 달리 관광서비스, 글로벌 MICE, 콘텐츠 엔터테인먼트 등 소프트한 산업으로 접근할 수도 있을 것이다.

10여년 만에 찾아온 평화의 기회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대화의 기회가 올지 알 수 없다. 옛말에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 대통령께서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의 초석을 놓는 위대한 업적을 만들어 돌아오시길 바란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총괄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