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성폭력 예방, 배려의식 높이자

문송천 카이스트 교수
입력일 2018-04-02 15:06 수정일 2018-04-02 21:23 발행일 2018-04-0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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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천 카이스트 교수

미국 영화계를 필두로 번진 바람결 같기만 하던 미투 현상은 한반도에 이르더니만 급기야는 태풍급으로 변모했다. 일반적으로 성(性)에 대해 전통적으로 개방적인 것으로 알려진 서구 사회를 우리가 이렇게 한번에 능가할 줄은 정말 몰랐다. 필경 드러나지 않은 고질병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여 나만 재미 보면 그만이고 그 이상은 더 없다는 생각이 얼마나 팽배해 있었길래 그랬단 말인가. 우리 사회가 남에 대한 배려 의식 수준이 낮은 것은 어디서 유래됐을까. 타인에 대해 배려한다는 뜻은 작게는 옆에 있는 이가 누구든 불편을 느끼지 않게 하는 사소한 일부터 크게는 타인을 위해 적극적 희생을 선택하는 일까지 다양할 것이다. 배려의식을 수치로 나타내기는 쉽지는 않지만 이웃에 대한 배려를 표시하는 형태 중에서 가장 수준 높은 표현은 단적으로 사회저변의 기부문화라고 봐야 한다. 

기부가 일상화돼 있는 나라를 보면 기부정신이 남다르다. 일례를 들어보자. 종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사회기부와 연결하여 즐기는 스포츠로 마라톤이 있다. 마라톤은 인간의 체력적 한계에 봉착하는 지점이 존재하고 체력이 고갈된 한계상황에서도 여하히 정신적으로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므로 완주 자체가 어렵다. 따라서 마라톤 주자로서 아스팔트 주로를 달리다 보면 힘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질병이나 가난 혹은 소외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고 한다.그래서인지 그런 고통 속의 이웃들에게 기부하자는 취지에서 성금 모금 행사가 큰 규모의 마라톤대회라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예외 없이 들어있다. 그러나 성금 규모면에서는 국내와 해외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는 마라톤 마니아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 규모의 대회가 셋씩이나 있다. 영국은 고작 한개뿐이다. 그러나 마라톤을 통한 이웃돕기 총액은 지난 20년간 우리는 초라하게도 2억원, 영국은 놀랍게도 1200억원이다. 이 차이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물론 모금방식에도 문제가 있을 수는 있다. 런던마라톤에서 개인 단독참가보다는 단체참가를 유독 권유하는 까닭도 알고보면 기부 수준을 끌어올리려는 자구책의 하나다. 그러나 전반적인 기부 문화 수준이 낮다면 마라톤 대회 당 60억원이라는 거금이 모일 리는 없다. 이렇듯 기부문화가 사회 전반에 뿌리깊게 내려져 있기 때문에 노숙인에서 참전용사에 이르기까지 불우이웃에 대한 배려는 놀랄만하다.

물론 영국에도 예외없이 미투 운동이 있었다. 불륜의 주인공은 차기 대권을 노리는 현직 제2 야당 당수다. 이 사건으로 정치생명이 곤경에 처했으나 극적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평소 불우이웃을 향한 그의 기부 선행이 과거행적을 캐던 중 알려지면서 그를 결국 ‘구원’해 준 역할을 했다. 우리 정치인은 대조적이다. 자신의 성추행 전력에 대해 심지어는 알리바이 증거라며 들이대는 이까지 등장하고 있어 우리를 아연실색케 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 폭행 및 일탈 문화를 바로 잡기 위해 가능한 한 제도화해야 할 부분도 있겠으나 거기서 그쳐서는 아니 된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이 타인에 대한 배려 의식을 고취시켜 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건 제도화 영역과는 거리가 멀다.

문송천 카이스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