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대한민국, 대중의 지배를 걷어낼 수 있을까?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
입력일 2018-03-29 16:43 수정일 2018-03-29 16:43 발행일 2018-03-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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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

대부분의 대중적 개인들은 특정 사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견 사회 현안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가지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별 관심이 없고 깊게 생각해보지 않는다. 사회 일원으로서 책임감도 별로 느끼지 않는다. 전문가라고 여겨지는 지식인들 중에도 대중 속의 개인에 불과한 인사들이 매우 많다. ‘전문가’라고 불리는 대중적 지식인은 어느 새 대중의 일원이 되어버렸다. 이들에게 있어 자유의 개념은 소극적 자유에서 적극적 자유로 바뀌고 비례적 평등은 양적 평등으로 바뀌면서 중용(中庸)의 자리를 이탈한다. 대중의 지배 시대에 벌어지는 전형이다. 

이에 대해 가세트(Gasset)는 이렇게 비판했다. “우리 시대의 특징은 우수한 전통을 지닌 집단에서도 대중이나 범인이 우세하다는 것이다… (중략) 자질을 평가할 수도 없고 정신구조상 부적격인 가짜 지식인들이 점차 승리를 거두고 있다.”, “전공 분야를 꽤 잘 알고 있으니 무식한 자들은 아니고 그 경계를 넘어서면 아는 것이 없으니 ‘무식한 식자’라는 칭호가 적절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전공 분야의 지식마저도 잘 알지 못하는 ‘무식한 무식자’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문제는 이들이 대중의 자리에 머물지 않고 사회의 지배 세력으로 떠올라 정치·경제·문화 부문 등 거의 모든 분야를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때를 승시(乘時)한 대중적 정치인들은 이런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고 부추김으로써 정권을 획득·유지하려고 획책한다.

‘부정의한 정의’를 외치는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킴으로써 정권을 획득하려는 정치인들의 책략과 무지에 의해 민주 정체(政體)는 타락한다. 민(民)을 위한 ‘정치’라는 용어는 탐욕과 부패와 음모라는 어두운 이미지를 스스로 각인하고 타락한다. 지금 한국의 모습이 그렇다. 자신에게 끊임없이 사회적 책무를 부여하고 문제의 타개책을 찾고자 노력하는 자유 지식인의 목소리는 외면당하기 일쑤다. 기술 발전을 선도하며 대중에게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번영을 안겨준 자본가와 기업가들은 공적(公敵)으로 몰려 있다. 반면에 자유의 질서를 파괴하는 장본인인 정부는 해결사를 자임하며 나라의 존속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다.

이기적 인간의 속성에 비춰보면 대중 민주정을 구원할 수 있는 확실한 길은 없어 보인다. 권력 분점과 견제에 의한 민주정도 그 수명이 길어 보이지 않는다. 극히 소수의 선진국을 제외하고는 삼권분립도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민주정 하에서 방법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민(民)을 위하고 생존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되는 제도를 그려보아야 한다. 결국 제시할 수 있는 것이 국가의 기능을 수행하는 정부의 기능을 크게 제한하는 ‘작은 정부’다. 작은 정부가 지향하는 개인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정신이 헌법의 골격이 되어야 한다. 작은 정부에서야말로 인류의 지혜가 응축된 사회 질서의 보존과 유지를 통해 모든 대중적 개인들의 삶을 가장 행복하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중의(衆意)를 모아 실현하는 정치 영역에 속하므로, 국민과 정치인이 그런 이해와 역량을 갖추지 못한다면 실현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의 미래의 운명은 그 여부에 의존할 것이다. 국가의 생존마저 위협할 수 있는 대중 민주정의 부정적 측면을 막을 수 있는 작은 정부의 정신이 헌법에 담기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정녕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게 될 것이다.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