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펜스(Pence)룰의 펜스(Fence) 뛰어넘기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입력일 2018-03-08 16:20 수정일 2018-03-08 17:35 발행일 2018-03-09 23면
인쇄아이콘
20180205010001315_1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미투의 원조인 미국 할리우드는 이제 애교처럼 느껴진다. 어느 여검사의 폭로에서 시작된 우리나라의 성폭력 고발운동 ‘미투’(#MeToo) 광풍은 연극계를 시발점으로 문화예술계를 순식간에 휩쓸더니 대학가, 기업을 넘어 어느 새 정치권의 유력 인사들까지 풍비박산을 내버렸다. 

속된 말로 “한방에 훅간다”는 얘기가 실감난다. 이제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미투 뉴스가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새 생명의 계절인 봄에 너무도 잔인하다. 

발뻗고 잠 잘 수 있는 사람들은 여성 밖에 없다는 자조섞인 농담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터에서뿐 아니라 쉼터에서조차 여성들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이른바 ‘펜스(Pence) 룰’이 남성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펜스 룰’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2002년 의원 시절 어느 인터뷰에서 “아내가 아닌 어떤 여성과도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고 자신의 결혼생활 기준을 설명한 데서 기인한다. 펜스 부통령의 각별한 아내 사랑이자 자신의 결혼생활 수칙이 마치 모든 남성들의 일반적인 행동 강령, 여성 응대 매뉴얼로 확장된 셈이다.

하지만 미투 운동은 ‘남녀칠세 부동석’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다. 페미니즘만의 문제도 아니며 성범죄 교화 차원에서만 접근할 일도 아니다. 남녀를 떠나 우리 사회에서 자행되어온 권력형 범죄 및 각종 차별에 대한 경고가 미투에 담긴 핵심이다. 뿌리 깊은 유교주의 잔재 속에서 아직도 떨쳐내지 못하는 남존여비를 향한 거침없는 외침인 것이다.

미투 운동은 결국 평등, 특히 남녀평등을 향해 가야 한다. 남녀고용평등법을 비롯해 아무리 남녀평등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어도 펜스룰이 슬그머니 우리들 마음 속에 자리잡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남성들이 여성을 멀리해야 한다는 식으로 펜스룰이 변질되어 남녀평등의 순수한 가치가 부정적으로 뒤틀린다면 미투는 한낱 가십거리로 전락하고 정치공작 등 각종 꼼수에 부당한 도구로 악용될 뿐이다.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아직도 남성들이 지배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이미 여성들이 부당하게 소외되는 현실이 미투로 인해 심화될까봐 걱정스럽다. 감독, PD, 톱클래스 연예인 등 남성들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더 큰 문화예술계의 상황은 다른 분야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 성접대 등 남성들의 지배 본능이 만연한 과거의 전례에 비추어 볼 때 미투가 자칫 여성차별, 혐오로 이어질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남성 개개인의 차원을 넘어 집단적으로 펜스룰이 문화예술계를 지배하게 된다면 여배우의 꿈도 여가수의 스타탄생도 여PD의 창의성도 더 억울하게 날아갈 수 있다. 펜스룰의 오용으로 여성의 기회가 오히려 위축되는 일은 또 다른 차별이다. 미투를 통해 남녀 예술가 사이의 협업이 성행하고 차별 없는 공조가 더 공고해져야 한다. 펜스룰의 펜스(담, Fence)를 무너뜨려야 한다.

미투로 점철된 2018년의 봄. 미투는 개인의 연출 생명이나 정치 생명을 끝내는 도구가 아니다. 펜스룰도 답이 아니다. 미투를 통해 부당한 권력에 맞서고 성별을 떠나 동등한 접근권이 보장돼야 한다. 만물이 피어나는 봄에 미투도 새롭게 피어나야 한다. 미투를 넘어 위드유, 펜스룰의 펜스를 뛰어넘어 투게더로.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