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중년'을 버리면 희망 없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입력일 2018-03-07 15:51 수정일 2018-03-07 15:52 발행일 2018-03-0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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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해가 바뀌면 자리이동이 잦아진다. 인사철답게 승진축하 코멘트가 연이어 테이블 위를 넘나든다. 삼성과 LG그룹은 사상최대의 임원인사가 있었다고 한다. 축하할 일이다. 50대 초중반까지 CEO 연령대가 낮아졌다는 뉴스도 있다. 당연히 임원 평균연령은 줄줄이 낮아져 40대 임원까지 생겨난다. 10년 전이었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40대에 ‘기업의 별’이라는 임원 직함을 다는 이들이 대거 등장하는 것은 이제 뚜렷한 추세가 되고 있다. 

문제는 감춰진 이슈다. 든 사람이 많다면 그만큼 난 사람도 많은 법이다. 자리의 숫자에 변화가 없다면 어떤 이에게 승진은 곧 다른 이에게 퇴출 혹은 탈락일 수밖에 없다. 승진 문호가 좁아질수록 퇴출되고 탈락하는 인원은 더 많다.

승진파티의 이면에 존재하는 퇴사자의 모습은 주목받기 어렵다. 새로 임원이 되는 이들의 연령이 젊어질수록 퇴출되는 이들의 나이도 젊어질 수밖에 없다. 한창 일할 나이에 물러나는 것은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들에게도 받아들이기 힘든 꽤 충격적인 퇴장일 수밖에 없다. 청춘과 궤를 함께 한 곳이었다면 패배감과 박탈감은 치명적이다.

이들 대부분은 우리가 중년이라고 부르는 이들이다. 빠르면 40대 초중반, 늦으면 50대 중후반이다. 즉 한참 일할 나이대다. 회사로선 인원감축의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연령대이겠지만, 당사자로선 피부로 느끼는 생존의 위협이 가장 큰 연령대다. ‘졸업→취업→결혼→출산→양육’의 사회인모델에 따르면 이들 대부분이 가정에서 주 소득자이며 가장이다. 맞벌이라면 좀 낫겠으나, 그렇다고 가장의 역할의 흔들리는 것이 벌충되긴 어렵다. 소득도 많겠지만, 지출도 많은 시기에 맞닥뜨린 중년가장의 퇴장은 가족 구성원들에게 연쇄적인 패닉을 일으킨다. 중년가장의 몰락은 개인적인 불행에 그치지 않고 ‘가장실업→빈곤→사회적 비용 증가’로 연결되며 상당한 파급효과를 낳는다.

생산·소비활동의 정점인 중년가장이 무너지면 이중삼중의 충격파가 불가피하다. 한국사회를 지지해줄 핵심자원이 방치된 이후 되돌아올 날선 부메랑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럼에도 현재 한국사회에서 중년은 잊혀진 존재다. 투명인간에 가깝다. 이들은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사회적 정책적 지원은 거의 전무하다.

중년들에게 닥친 퇴출의 그림자는 오로지 개인적인 문제로 남을 뿐이다. 워낙 적자생존·승자독식의 경쟁에 익숙해있는 세대라 동년배조차 동료의 퇴출을 무능력자의 실패로 치부해 버린다. 중년의 강제퇴출이 시대의 의제가 되지 못하고 소수이슈로 남는 이유다.

거대한 숙명을 부여받은 중년가장이면 한 번쯤 상상해보자. 갑자기 일이 사라진 날을…. 습관처럼 발에 익은 출근길이 사라지면 어떤 느낌일까? 무엇이 떠오르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중년가장을 곁에 둔 가족도 한번 상상해보자. 어느 날 내 남편이, 나의 아버지가 직장을 잃고 수입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청년실업만큼 상황이 급박한 것이 중년 실업이다. 언제까지 중년의 불행을 외면할 것인가? 중년을 버리면 한국사회에 희망은 없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