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석유유통 정상화 '첫단추' 꿰자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입력일 2018-02-22 15:21 수정일 2018-02-22 15:25 발행일 2018-02-2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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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희망찬 무술년 새해가 밝은 지 두 달이 지났다. 하지만 석유업계는 짙게 드리워진 지난 정부의 그림자로 여전히 우울하다. 알뜰주유소 때문이다. 2011년 “기름값이 묘하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한 마디에 급조된 포퓰리즘 정책은 아직도 석유업계를 옥죄고 있다. 셰일혁명으로 유가가 안정화 시기에 돌입한 현시점에 알뜰주유소는 관행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유물이자 청산돼야 할 대상이다.

당시 정부는 각종 특혜를 부여한 알뜰주유소를 내세워 민간시장에 개입하고 석유시장을 왜곡시켰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하는 시점이라 경제적 충격을 감안할 때 당연히 유류세 탄력세제를 시행해야 했지만, 알뜰주유소라는 전대미문의 정책이 나타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던 석유시장을 망가뜨렸다.

청와대에서는 유가인하를 위한 TF팀이 꾸려지고,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내 석유시장은 과점 된 상태여서 가격 경쟁이 투명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거들었다. 또 산업부 장관은 “기름값 원가 구성요인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있다”며 정유사가 기름값을 인하하게끔 압박했다. 여기에 공정위도 가세해 정유사가 ‘주유소 나눠먹기’를 위한 담합을 했다며 과징금 2548억원을 부과했다. 이를 배경으로 2012년 탄생한 것이 알뜰주유소 정책이다. 국내 정유사의 과점구조를 깨겠다며 삼성토탈(현 한화토탈)을 국내 제5의 석유제품 공급사로 참여시키고, 석유공사를 유통업에 진출시키는 한편 석유수입사에 힘을 실어줬다. 기존 정유사 중심의 석유 유통시장을 주유소 중심으로 옮겨 유가 인하 경쟁을 유도한 것이다.

하지만 알뜰주유소 정책이 6년째 시행되고 있는 지금의 석유시장은 정부가 예측했던 방향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 석유유통의 하부조직인 주유소와 석유대리점만 망가뜨렸을 뿐 석유시장의 변화는 거의 없다. 국민 세금으로 유지되는 알뜰주유소가 하부 유통단계의 마진을 거둬가는 역할만 한 것이다.

최대의 복병은 고속도로 알뜰주유소였다. 정치인 출신의 김 모 사장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고속도로 주유소 기름값 인하에 매진했다. ‘주유소 서비스 평가지표’라는 것을 만들어 전국 알뜰주유소 보다 50원 싸게 판매하도록 정책을 이끌었다. 여기에 부응하지 않은 주유소는 재계약을 통해 솎아냈다.

그 결과 고속도로 주유소들은 대부분 그 지역 최저가 판매 주유소가 됐고, 연평균 매출액은 전체 주유소 평균보다 3배 이상 높아졌다. 고속도로 인근 국도변 주유소에 큰 타격을 입혔다.

알뜰주유소로 인한 주유소의 휴·폐업 증가로 일자리 역시 급격히 사라졌다. 2012~2016년까지 폐업한 주유소는 1301개소에 달했는데, 1개 주유소 당 주유원을 포함한 고용 인력이 평균 8명임을 고려하면 5년간 약 1만 여개의 주유소 일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알뜰주유소 정책을 객관적으로 재평가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이 같은 차원에서 정유사와 석유 3단체(석유협회, 유통협회, 주유소협회)가 참여하는 ‘석유유통개선협의회(가칭)’ 출범이 시급하다. 하루빨리 협의체가 출범해 정부와 민간이 소통하고 석유시장이 정상화되기를 바란다.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