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준비된 신입사원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입력일 2018-02-19 16:20 수정일 2018-02-19 16:21 발행일 2018-02-2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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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얼마 전 모 철강기업의 현장사원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만 23세의 이 사회 초년생은 부끄러워하는 몸짓과는 달리 샛별을 닮은 눈빛을 갖고 있었다. 몇 마디 말을 섞고 보니 여느 젊은이와는 사뭇 다른 심지가 보였다.

“전 처음부터 아버지를 롤 모델로 삼았습니다.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아니었고, 놀기 좋아하는 청춘이었거든요.” 그의 아버지는 철강공장의 천장기중기 반장이다. 철강공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보직이지만 흔치 않은 직업이다.

공고를 다녔던 이 젊은이는 엄청 놀기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만 놀고, 군대를 일찍 다녀와라.” 좀체 말이 없던 아버지의 이 한마디에 퍼뜩 정신이 들더란다. 군 제대 후 곧바로 천장크레인 운전기사 자격증을 땄다. 친구들은 대학 졸업 후 대기업과 공기업에 취업 원서를 낼 때 그는 철강기업 현장근무자로 이력서를 넣었다.

경쟁자들은 대부분 나이 많은 경력자들이었다. 젊은 피가 필요했던 철강회사의 선발 방침에 따라 이 젊은이는 취업에 성공했다. 2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젊은이의 연봉은 4000만원이다.

“미래를 위해 사이버 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집 한 채와 승용차 한 대만 있으면 결혼할 겁니다. 물론 부모님께 효도도 해야지요.” 30대 후반이 돼도 공기업과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는 취준생과는 비교되는 일이다.

3년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문대 1학년에 재학 중인 청춘이었다. “선생님 칼럼을 보고 전화드렸습니다. 철강 회사 입사를 목표로 하는데 ‘철 이야기’에 대해 깊이를 더하고 싶습니다.”

매체에 칼럼이 실릴 때마다 전화가 오가고 필자가 재직 중이던 회사의 생산 프로세스에 대해서도 상세히 알려줬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업문화라든지 창업자와 최고경영층의 기업철학까지 일러주게 됐다.

한동안 뜸했던 이 젊은이는 주말에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왔다. 가방에서 서류 뭉치를 꺼내더니 살펴 달라는 부탁이다. 먼 길을 찾아온 정성 때문에 서류를 봤더니 필자가 근무했던 회사의 중국, 태국 등 해외 사업장을 직접 방문하고 견학한 내용을 상세히 기록한 포트폴리오였다.

“개인 신분으로 해외공장을 방문했더니 공장 투어 안내를 꺼리시더라고요. 국내 사업장의 공장도 견학했습니다.” 왜 이렇게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 회사에 반드시 입사하기 위한 준비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멍멍한 기분이었다. 이토록 열정적으로 입사 준비를 하는 젊은이는 처음이었다.

왜 4년제 대학을 가지 않았냐는 질문에 실력이 모자랐다는 솔직함도 드러냈다. 이제까지 부모님께 불효를 했지만 제 힘으로 수준에 맞는 기업에 입사해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다는 속 마음도 비쳤다.

며칠이 지난 후 “합격했어요”라는 낭보를 전화로 전해왔다. 20대 1의 경쟁을 뚫고, 그것도 단 한명을 뽑는 입사 경쟁에서 이긴 것이다. 생면부지의 젊은이에게 내가 도와준 것은 ‘철 이야기’뿐이었다. 후배들에게 단 한마디의 청탁도 없었다. 그는 해냈다. 열망하던 회사에 입사했으니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일부 공기업이나 금융권의 채용비리처럼 실력도 없는 젊은이들이 갑의 입김을 앞세워 입사하는 작태와는 전혀 다른 당당한 모습들이다. 기회란 준비된 사람에게 주어져야 마땅하다.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