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평창 흔들기' 그만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입력일 2018-02-05 15:25 수정일 2018-02-05 17:45 발행일 2018-02-0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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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과연 어느 말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장웅 북한 IOC위원이 지난해 6월 방한때 했던 얘기가 맞아떨어졌다. “정치적 환경이 해결돼야 합니다. 스포츠 위에 정치가 있습니다”라는 그의 한마디가 이번 2월에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전반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 남작은 스포츠축제 기간 중 전쟁을 중지한 고대 그리스 스포츠축제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했다. 평화를 추구하는 올림픽 정신과 달리 과거 올림픽에서는 정치적 갈등과 소모적 분쟁으로 점철된 흑역사가 펼쳐졌다.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기 직전 베를린올림픽을 체제선전 도구로 악용한 사례를 비롯해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벌어진 이스라엘 선수들 몰살 사건 그리고 냉전시대에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과 1984년 LA올림픽 당시 미국과 소련 양 진영의 상호 보이콧 처사는 스포츠사에 씻지 못할 아픔을 안겨주었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반도에서도 그 동안 몇 번의 세계스포츠대회에서 단일팀 출전의 짧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 그마저도 단발성으로 그치곤 했다. 그런데 오랫동안 잠잠했던 남북 스포츠 교류는 평창올림픽 개최시기에 새로운 정부의 흐름과 맞아떨어져서 급물살을 타게 됐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참 단절됐던 남북 사이의 대화도 시작됐다. 그러나 막상 스포츠계 당사자들이나 정치인들, 일부 국민들 사이에는 극단적인 의견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스포츠를 통한 평화 추구”라는 주장에 “정치에 밀린 스포츠”라는 반론이 대두되면서 보수, 진보 진영의 색깔논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심지어 단일팀 합의 타결 직후엔 평양·평창올림픽 인터넷 포털 실시간 검색어 전쟁이 벌어지면서 골 깊게 분열된 국론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평창올림픽이 남북 공동입장, 단일팀 출전을 통해 한반도에 전쟁의 비극이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절호의 기회라는 점은 분명 높이 평가돼야 한다. 하지만 ‘평창이 안 보이고 평양만 보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그동안 북한이 순수한 스포츠축제를 어떻게 이용해 왔고 북핵을 둘러싼 갈등이 극대화된 작금 상황에 더 교묘하게 이용하는 모습을 이미 목격한 우리들은 마냥 환영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결국 이번 올림픽 성공의 핵심은 스포츠의 비정치화, 스포츠의 순수성 유지에 달렸다. 이를 위해 경기장 안팎에서 정부 및 여야 정치인들이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아울러 전무했던 한반도기 입장이나 단일팀 구성에 대한 여론 수렴 절차, 선수 등 당사자들과의 심도깊은 협의를 거치지 못한 점은 지금이라도 깊이 반성해야 한다.

평창올림픽의 성화는 이제 곧 활활 타오르기 시작해 16일간의 대장정에 들어간다. 스포츠가 선사하는 평화의 메시지는 언제나 환영하고 축복받아야 할 선물이다. 하지만 평화를 빌미로 자행되는 정치적 이용은 신성한 스포츠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며 인류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횡포다. 스포츠 위에는 정치도 없고 평화도 없다. 스포츠 위에는 스포츠에 대한 순수한 사랑만 있을 뿐이다.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