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정현에게서 페더러를 보았다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입력일 2018-02-01 16:01 수정일 2018-02-01 16:04 발행일 2018-02-0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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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테니스 단식 경기는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상당히 힘든 경기다. 스포츠 전 종목을 망라해서 아마 제일 힘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조그마한 종이 한 장 차이의 실력만 나도 스코어는 극과 극으로 벌어지게 되니 말이다. 유사한 종목인 탁구에서 21대 0이나 21대 2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스코어일 것이다. 그래서 테니스 단식 스코어는 어느 다른 종목에서보다 냉엄하다. 참혹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정현 선수가 21세 약관의 나이에 세계 4강에 올라선 것은 골프의 박세리나 축구의 박지성이 발휘한 성과를 한참 뛰어넘는 것일 수 있다는 어느 전문가의 평가가 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테니스는 상대방을 경기장 한 쪽으로 유도한 다음 반대편 다른 한 쪽으로 공을 넘겨 한 포인트를 따는 방식의 게임이다. 그런데 혼자서 뛰기에는 경기장이 상당히 넓은 편이다. 그래서 머리 싸움과 체력 싸움이 다른 스포츠 종목에 비해 대단하다. 신체는 축구선수 급이어야 하고 머리는 바둑 9단급이어야 한다. 이런 극단적 고난도 경기에서 한국 선수가 세계 4강에 진입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쾌거다. 특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 1위였던 노박 조코비치를 자신의 발 부상에도 불구하고 16강전에서 세트 스코어 3대 0으로 제압하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었다. 테니스는 신사도를 요구하는 경기다. 한 번은 그랜드슬램 대회 중 하나에서 결승에서 패한 선수를 장내 아나운서가 인터뷰했을 때 자신을 이긴 승자에게 축하의 뜻을 보내는 말을 끝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선수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좋지 않았던 점만을 되풀이하며 한탄하는 인터뷰를 일관했다. 신사도가 완전히 결여된 매너였다. 반면 정현은 매너 면에서도 수준급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래서 경기 상대 선수로부터도 덕담도 들었다. 준결승 상대로 꽤 버거웠던 로저 페더러 선수로부터 ‘조만간 세계 10위 안에 들 만한 자질을 충분히 다 갖추고 있다’는 격려를 받았다.

이런 선수에게 어려움은 없었을까. 정현은 페더러처럼 부유한 가정 출신이 아니다. 테니스 하나로 성공하려고 온갖 슬럼프를 헤치며 자신만의 성공 공식을 발견하기 위해 부단히 매진해 온 선수다. 인터뷰 도중 밝혀진 사실이지만 최근 4개월간 태국에서 특단의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했다고 한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자신의 수비 범위를 넓히기 위해 그쪽의 전문가 급 선수인 라파엘 나달에게 특별 개인지도를 받기까지 했다. 그의 의지에 감동하여 나달은 서울까지 와서 그에게 귀중한 신의 한 수를 몇 차례에 걸쳐 지도해 줬다.

이번 4강 성적은 반짝 효과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피눈물 나는 노력 끝에 일구어낸 값진 결과다.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내내 표정이 밝고 투지적일 뿐만 아니라 유머 감각이 뛰어나다. 인터뷰 도중의 어려운 질문을 여유 있게 받아 넘기는 실력은 벌써부터 20대 초반 시절의 페더러를 훨씬 능가한다. 테니스는 경기 생활 면에서 다른 종목에 비해 장수하는 종목이다. 페더러가 세계 톱의 위치를 불혹의 나이에 이르도록 거의 20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듯이 말이다. 신체와 정신 관리를 잘하면 페더러처럼 정현도 앞으로 20년을 우리의 자긍심을 북돋워줄 국보급 인물이다. 부디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펼쳐 나가기 바라는 마음이다.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