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유기농CEO' 남승우의 멋진 퇴장

이해익 경영 컨설턴트
입력일 2018-01-17 15:07 수정일 2018-01-17 15:08 발행일 2018-01-1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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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익 경영 컨설턴트

“명배우는 퇴장할 때를 안다.”(윌리엄 셰익스피어)

남승우(66) 전 풀무원 총괄 최고경영자(CEO). 그는 지난해 12월 31일자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65세 연말에 사직서를 내겠다”는 평소 약속대로. 임직원들의 박수갈채도, 공식적인 퇴임행사도 없었다. 풀무원의 사외이사들이 그에게 감사패를 전달한 게 퇴임식의 전부였다고 한다. “스스로 정년을 정해 은퇴를 선언하고 그것을 실행한 건 국내 기업사에 남을 새로운 이정표”라며 사외이사들은 감사패에 적었다.

왜 퇴임 시기는 65세일까? “고령이 돼서도 잘 할 수 있다고 하는 건 본인의 착각일 뿐이다. 정치인들은 그 나이에도 할 수 있겠지만 경영자는 업무량이 과중해 65세를 넘기면 기업경영을 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기업경영자들의 평균 은퇴 나이가 65세다. 나이가 들면 열정과 기민성, 기억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막중한 임무를 기민성과 기억력 쇠퇴를 무릅쓰고 나이 70 넘어서도 막무가내 한다는 게 본인과 나라에 모두 위태로운 일이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가 어리석다는 걸 안다. 반면에 어리석은 자는 자기가 어리석다는 걸 모른다. 그게 탈이다.

그의 후임은 누구인가? 풀무원은 새해 1일 이효율(61)씨를 후임 총괄CEO로 선임했다. 이 대표는 1983년 ‘사원1호’로 입사해 34년간 근속했다. 이는 풀무원이 올해부터 오너경영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풀무원은 개인회사가 아니다. 주식시장에 상장한 기업이다. 개인기업은 오너 승계냐, 전문경영 승계냐를 두고 이슈가 될 수 있겠지만 상장기업은 전문경영인 승계로 답이 정해져 있다”고 남 전 총괄CEO는 말한다.

스웨덴의 존경받는 거대기업집단 오너 가문인 발렌베리가에서는 경영자의 후보 반열에 오르는 자격조건 자체가 대단히 까다롭다. 첫째, 혼자 힘으로 명문대학을 졸업해야 한다.둘째, 해군사관학교를 나와서 상당기간 배를 타야 한다. 셋째, 발렌베리 이외의 외국 대기업에 입사해 경력을 쌓고 상당한 업적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경영이란 책임이 따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풀무원의 뿌리는 고(故) 원경선씨가 만든 풀무원 농장이다. 원혜영 더불어민주당의원의 아버지다. 서울 법대를 나와 현대건설에서 일하던 남 전 총괄 CEO는 경복고 동창인 원 의원의 권유로 풀무원에 투자하며 경영에 나섰다. 1984년, 10여명으로 시작한 풀무원은 2016년 매출 2조306억원에 직원 1만명을 둔 회사로 성장했다.

원경선씨는 1914년 평안남도 중화군에서 태어났다. 1970년대 중반 국내에서 처음으로 유기농을 시작해 평생 농업에 헌신하며 100수를 누리다 2013년 소천한 ‘한국 유기농의 아버지’, ‘농군나눔공동체의 선구자’다.

필자도 경제정의를 내세우며 출범한 초창기 경실련에 기업인으로는 유일하게 어렵사리 참여했던 시민운동가로 이모저모로 원경선 옹을 뵙고 깊은 영감을 얻곤 했다. 남승우 CEO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바른 먹거리’, ‘바른 사람들’ 풀무원의 정신을 발현한 유기농CEO라고 칭하고 싶다. 또 세계속의 풀무원이 되기를 바란다.

이해익 경영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