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중산층의 은퇴몰락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입력일 2018-01-15 15:23 수정일 2018-01-15 15:24 발행일 2018-01-1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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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옛말에 인생에서 꼭 피해야 할 3가지가 있다고 한다. 바로 ‘초년등과(初年登科)’, ‘중년상처(中年喪妻)’, ‘노년궁핍(老年窮乏)’이다. 초년에 성공하면 자만이 화를 부르고, 중년에 배우자를 잃으면 따뜻한 가정생활이 힘들며, 노년에 빈곤해지면 모든 게 무용지물이라는 가르침이다. 실로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는 정확하고 적절한 비유다. 이런 것 보면 옛말 틀린 거 거의 없다. 인생을 먼저 살았던 많은 이들의 공통된 경험이 축적된 것이니 법칙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요컨대 인생은 끝나봐야 잘 살았는지 알 수 있다는 의미다. 초중반에 잘 달려도 뒷심이 달리면 그 인생은 별로다. 젊은 시절 얼마나 잘 나갔는지 하는 것과 노년기 인생의 질이 꼭 비례하진 않는다.

실제로 인생엔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반사다. 상상조차 못한 일로 후반인생이 뒤틀어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얼마 전 알려진 유명 코미디언 자니윤의 노년불행이 대표적이다. 주로 미국에서 활동했지만 한국에서도 꽤 알려진 인물이다. 한때 본인 이름이 내걸린 토크쇼까지 진행하며 입지전적인 성공을 이룬 인생으로 유명했다. 말년엔 정치권에 기웃대다 한자리도 했었다. 돈은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벌었을 터다. 이런 그가 치매에 걸리고 이혼까지 당한 후 돌봐주는 이 없이 쓸쓸이 요양병원에 누워 있다고 한다. 불운이라 혀 찰 일은 없다. 설마가 사람 잡듯 누구든 이러한 노후 위기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사자조차도 자신이 노후에 맞닥뜨릴 이 같은 현실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빛이 강렬했던 만큼 그림자도 자욱한 인생인 셈이다.

자니윤 같은 유명인이 이럴진대 하물며 평범한 장삼이사들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스스로 노년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노후에 빈곤과 불행에 빠지는 건 시간문제다. 특히 위험한 건 중산층이다. 현역시절 내내 힘들었던 빈곤층이야 물리적 결핍과 고통에 대한 내성이나마 있다지만, 그럭저럭 순탄하게 인생을 살아온 중산층은 낯선 노년의 가난과 위기에 무너지기 일쑤다.

은퇴와 함께 ‘중산층→빈곤층’으로 전락하는 루트가 몇 가지 있다. 건강악화로 인해 장기간 병원신세를 지고 과도한 의료비로 인해 몰락하는 경우가 가장 대표적이다. 치매를 비롯해 각종 질병과 사고는 노년궁핍의 지름길이다. 또 자녀의 자립 실패로 인해 돈을 대주거나, 이혼·사별 등의 이유로 배우자와 결별하면 쟁여둔 곳간은 금방 메마른다. 고령사회답게 은퇴 후 창업·투자 등의 실패도 노년 빈곤을 불러온다.

빈곤한 노년층의 대량발생은 이미 시작됐다. 베이비부머의 ‘맏형’ 1955년~1957년 생들이 2015년부터 60세로 진입했고, 2020년부터는 정년연장조차 적용되지 않는다. 이미 720만명에 달하는 고령인구 중 폐지수거를 하는 노인만 180만명이란 통계도 있다. 이들 모두가 현역시절 빈곤층이었을 리 없다. 적잖은 수가 중산층의 삶을 누리다 갖가지 이유로 빈곤의 궤도에 접어들었을 것이다. 1970년대 중반태생까지 포함한 광의의 베이비부머만 1700만명에 달하는데 이들도 착착 늙어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유유자적한 은퇴생활은 희망사항일 수밖에 없다. 중산층의 은퇴몰락을 막아낼 대책이 절실하다. 공적인 정책수립은 물론 개인들도 노후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안타깝게도 시간이 너무 없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