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여신과 함께' 문화예술계 성폭력, 적폐청산 나서야!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입력일 2018-01-08 15:03 수정일 2018-01-08 15:28 발행일 2018-01-0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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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신과함께-죄와 벌’의 저승 법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사후 49일 동안 7번의 재판을 거쳐야만 한다.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까지. 

이 7개의 지옥에서 7번의 재판을 무사히 통과한 망자만이 환생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지배권력관계를 치사하고 막무가내로 이용한 성폭력의 지옥에는 도대체 몇번의 재판이 필요한 걸까?

작년 10월 할리우드의 거물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 폭로 사건을 계기로 엔터테인먼트업계와 언론계, 정치계 등 전세계로 빠르게 확산된 성폭력 고발운동 ‘미투’(#MeToo) 캠페인이 더 거센 파장을 이어가고 있다.

미투 캠페인에는 와인스타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할 뻔했던 일을 폭로한 애슐리 주드를 비롯해 엠마 스톤, 리즈 위더스푼, 나탈리 포트먼, 에바 롱고리아 등 톱클래스 여배우들과 ‘그레이 아나토미’ 제작자 숀다 라임스, 미셸 오바마의 참모를 지낸 변호사 니나 쇼 등 300명의 ‘여신’들이 헌신했다.

이들은 무술년 초하루 뉴욕타임즈 광고를 통해 “남성 중심의 작업장에서 단지 지위를 높이고 의견을 내고 인정받기 위한 여성들의 투쟁은 끝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성폭력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여배우들과 여성 작가 ·감독 ·프로듀서 등 할리우드 여성들이 ‘타임즈 업’(Time’s Up) 단체를 결성했다는 뉴스가 2018년 새해 벽두를 장식했다. ‘타임즈 업’은 미국 직장 내 성폭력, 성차별이 난무하던 ‘남성 독점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의미다.

성추행한 DJ를 제소해 승소한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 등 미투 캠페인 참여자들은 시사주간지 타임의 ‘올해의 인물’로도 선정됐다. 타임즈 업은 할리우드뿐 아니라 공장, 식당 및 호텔 등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성폭력 피해를 법적으로 돕기 위해 1300만 달러의 기금을 조성한다.

배우 위더스푼은 “우리는 고립돼 있지 않다”며 “마침내 서로의 소리를 들었고 봤다. 그리고 이제는 연대해 팔짱을 꼈다”고 말했다. 타임즈 업 회원들은 1월 7일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검정색 의상을 입고 레드카펫을 걷는 퍼포먼스를 예고했다. 배우 롱고리아는 “이것은 단순한 패션이 아니라 여성들이 연대하는 순간”이라고 목청을 높혔다. 

우리나라에서도 도제식 교육에 의존하는 문화예술계는 성폭력의 사각지대다. 작년 봄부터 문학계를 비롯해 각계 각층에서 각종 폭로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작년 말부터 여성가족부는 문화예술계에 만연한 성폭력에 대응해 피해자들의 2차 피해를 방지하고 관계자들의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문화예술계 성폭력 피해자 가이드라인’을 제작 배포했다. 가이드라인은 문화예술계 성폭력의 특성을 이해하고 피해자들에게 법률적 지식을 제공하고 있다.

문화계 성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철저한 권력구조에 의해 상습적으로 발생하지만 폐쇄적인 인맥구조와 경제적 불안정성로 피해사실이 신고로 이어지기 어렵다. 예술가의 꿈을 위해서는 인맥을 통해 인지도를 쌓아야 하기 때문에 남성 선배 예술가가 작품을 봐주겠다며 술자리나 작업실로 불러내도 위험을 감내하고 나가게 된다. 이러한 문화예술계 생태를 모르는 성폭력 상담사나 법조인들이 “왜 거기에 나갔느냐, 당신도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냐”라고 반응할 때 피해자는 두번 세번 죽는 셈이다.

정부의 가이드라인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여신들이 나서야 한다. 우리보다 늦게 시작된 할리우드 미투캠페인이 정부 주도가 아닌 동종업계 동료들의 자발적인 ‘타임즈 업’ 결성으로 실질화되는 과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