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스스로 만드는 행복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입력일 2017-11-22 16:42 수정일 2017-11-22 16:43 발행일 2017-11-2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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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동국제강 상무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주말에 노모 두 분을 집으로 모셨다. 95세의 노모와 85세의 장모님이 한 집에서 이틀간의 시간을 함께 한 것은 처음이다. 사돈지간이라 서먹하셨지만 일제강점기와 6.25 동란을 겪으신 분들이라 이내 친숙해지셨고 이야기는 새벽녘까지 이어졌다.

오랜만의 말동무가 생긴 때문인지 두 분의 얼굴은 밝았다. 간혹 함박웃음을 터뜨릴 때는 지켜보는 우리 내외도 즐거웠다. 그러다가 피난 시절의 이야기와 보릿고개 이야기, 그리고 먼저 가신 남편을 떠올리며 눈물을 찍어내실 때는 우리 내외의 가슴도 먹먹했다. 두 분은 겉으로는 건강하시지만 이곳 저곳 아픈 구석이 역력했다. 세월의 나이테가 수 십 번이나 흘렀으니 주름살은 물론이요 머리는 백발이시다. 장모님은 어머니와 열 살 차이가 나셨지만 오히려 신체가 더 불편하셨다. 앉고 일어서시는데도 어려웠다.

어머님은 안사돈을 진정으로 걱정을 하시면서 이런저런 운동법을 알려주시는가 하면 얼굴 미용엔 어떤 음식이 좋다고 하신다. 주고받는 두 분 노모의 대화는 끝날 줄 몰랐다. 마치 사춘기 소녀들의 수다 같기도 했다. 웃으시다가, 눈물을 찍어 내시다가, 30대의 손주들을 보면서 영락없는 애비의 젊은 때와 같다는 감상도 하셨다.

두 분은 포도주 한 잔씩 곁들이셨다. 마침 TV에서는 전국노래자랑이 방영되고 있었다. “저분이 올해 90세라네요.” 사회자 송해씨를 보고 하신 말씀이다. “사돈도 잘 드시고 운동도 열심히 하셔서 건강하게 사셔야지요.” 이런 대화를 주고받으시던 95세의 노모는 큰 소리로 가수 오승근씨의 노래를 따라 부르셨다.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팔까지 흔드시며 흥겨워하시자 장모님도 흘러간 옛 노래로 뒤를 이으셨다. 그날 따라 영하권의 날씨였지만 집안 공기는 봄날의 화창한 기운이었다. 95세임에도 나이는 상관없다는 노래 가사는 오래도록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렇게 모여서 지낸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사돈은 행복하시겠어요.” 장모님의 인사말 속에는 외로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함북 출신의 군인과 결혼하셨으니 형제자매가 없으셨다. 외아들과 20여 년째 사시면서 말동무가 없어 외로웠던 것이다. 친정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아내의 마음이 짠 할 것인데….

오래전 일본에서는 ‘행복역’이란 기차티켓 열풍이 일었다. 100엔짜리 ‘행복역’ 기차표를 케이스에 넣어 목에 걸고 다니는 진풍경이다. 그걸 달고 다니면 행복해진다는 열풍은 인간의 ‘행복 갈구’ 반증이다. 괴테의 행복론은 노고로 마무리 된다. “75년 동안의 생애 중 정말 행복하다고 느낀 것은 4주 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노고였다”고 했다. 실체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행복은 생각 나름이다. 오늘 하루가 대단히 행복했다고 느낄 수 있다면 행복한 날이 분명하다.

온 종일 직장생활에 애쓰고, 가족을 부양하느라 부모님을 제대로 모셔 보지 못한 50~60대의 행복 추구는 실천이다. 이제라도 노부모의 말동무가 돼보는 것이다. 새로운 일에도 과감히 도전해 보는 것이 행복일 수 있다.

“길이 있으면 길로 가고, 길이 없으면 벼랑을 기어 올라가라. 오직 오르는 것만이 목표이다”고 했던 모택동(어록:등반)의 말은 나날이 만족 할 수 있도록 놀지 말라는 의미이다.

‘절대 행복’은 없다. 자신이 원하는 행복에 조금 더 가까워지도록 만드는 것이 행복이란 생각이다.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