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법과 경제가 만나는 방법

이창민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입력일 2017-11-01 15:18 수정일 2017-11-01 15:19 발행일 2017-11-0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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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민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라는 것이 있다. 주인이 대리인을 고용해 일을 맡길 경우 나타날 문제점들이 많다는 것이다. 둘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대신 일을 하는 대리인이 주인의 이익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 문제가 골치 아프다. 이러한 관계는 국민-정치인, 국민-공무원, 주주-경영진에서 나타난다. 대리인이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커진다. 대리인들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자원, 특히 돈의 단위는 천문학적이다.

주주와 경영진의 관계는 주주가 자신을 대신해 기업의 일상적인 경영판단을 경영진에게 맡겨놓은 것이다. 여기서 경영진이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학문적 용어로 ‘경영권의 사적 이익(Private Benefit of Control) 추구’라고 한다. 매우 추상적인 수준에서는 경영진이 회사의 자원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는 행위이고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소소하게는 경영진 사무실을 매우 호화롭게 꾸밀 수도 있으며 회사 비행기를 타고 주말에 골프를 치러 갈 수도 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조용한 생활을 즐기는 경우도 연구를 통해 나타났다. 혹자는 조용하게 사는 게 무슨 문제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적절한 투자를 통해 기업의 가치를 높여야 할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통해 우리가 잃은 기회라는 걸 생각해야 한다. 기회비용 말이다.

문제가 커지는 경우는 회계조작, 횡령, 배임 등 기업범죄로 개인의 사적이익 추구가 확전되는 경우다. 금전적, 비금전적 이득을 위한 주가조작의 유혹, 총수일가의 경영권 방어, 상속을 위한 지배구조 재편 및 내부거래 등의 행위는 그 파급효과가 만만치 않다. 그런데 최근 법원에서 연달에 사적이익 추구에 대해 관대한 판결이 나오고 있다. 면죄부를 주는 방식도 다양하다. 공식적인 절차(이사회 결정)를 거쳤기 때문이라고 하거나 사적이익 추구치고는 규모가 작다고도 한다. 사적이익만 추구한 거 같지는 않다고도 했다.

여기서 자세한 법리는 따지고 싶지도 않고 그럴 능력도 안 된다. 다만, 주인-대리인 문제가 상당히 강력한 이론인 것은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너무나 잘 설명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많은 부분 개인적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 내 돈은 아끼지만 남의 돈은 쓰기 쉽다. 그래서 대리인의 가장 필요한 덕목이 충성심(loyalty)이다. 완벽한 감시와 통제가 없는 한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20여 년 동안 국내에서 경제성장의 해법으로 규제완화를 엄청나게 외쳤다. 불필요한 규제는 없애야 한다. 그러나 법과 경제가 잘 만나는 방법은 법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인간은 인센티브에 반응하는 동물이다. 그리고 이 인센티브의 주요 구성 요소가 법이다. 법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행동이 바뀌고 이익추구의 방향이 갈린다.

그리고 주주-경영진의 문제는 어릴 적 부모님이 주신 돈을 참고서 산다고 하고 딴 짓 한 후 적당히 눙치는 문제가 아니다.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기업가치 그리고 경제 성장의 문제라는 거다. 돈의 흐름을 생산적인 부분으로 유도하는 것도 법의 중요한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