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석유시장 'MB 적폐' 청산 시급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입력일 2017-10-29 16:38 수정일 2017-10-29 16:40 발행일 2017-10-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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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석유대리점은 정유사와 주유소 사이에서 중간 허리 역할을 담당하면서 지난 100여 년 간 우리나라의 주된 에너지원인 석유의 수급 및 가격의 안정과 건전한 석유유통질서 확립에 기여해왔다. 국내 석유산업은 일제시대인 1930~40년대 석유대리점을 중심으로 해외에서 석유를 수입해 판매하면서 태동됐다. 6·25 당시에는 미군정과 함께 국가 전략물자인 석유를 안정적으로 배급하며 에너지 안보의 기틀을 다지기도 했다. 이어 1970~8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 때에도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하여 산업화에 크게 공헌했다. 또한 1997년 석유산업 자유화 이후에는 급변하는 국제 석유시장에 능동적으로 대처함으로써, 현재 값싼 외국산 석유의 수입 및 유통이 자유로운 상황에서도 해외 메이저인 엑슨모빌이나 BP 등이 국내 시장에 진출하지 못할 만큼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하지만 원유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상회하던 고유가 시절, 이명박 정부가 기름 값 인하를 유도하고 소비자들에게 싼값에 기름을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도입한 알뜰주유소 정책으로 석유대리점이 과거 오랜 시간 쌓아온 석유시장에서의 이러한 순기능들이 무너지기 시작해 해마다 그 위상이 추락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정부가 석유공사를 유통업에 진출시키고, 인위적으로 세금을 투하해 연명하는 석유전자상거래 제도를 계속 운영함으로써 기존 석유대리점의 역할은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 전자상거래 지원금까지 포함하면 지금까지 1200억 정도의 세금이 투입된 알뜰주유소는 사실상 실패한 정책으로 판명이 났다.이번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송기헌 의원은 “이명박 정부에서 150억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지만 저유가 장기화 등으로 인해 알뜰주유소 가격경쟁력은 사라졌다”며 “과열경쟁으로 정부 지원을 받은 알뜰주유소에서 정량미달 판매, 가짜석유 판매 적발 건수가 증가하는 등 오히려 부작용만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석유대리점 업계가 침체된 또 하나의 문제는 전화기 한 대로 영업을 하는 영세부실대리점들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석유대리점은 1998년 73개소에서 2004년 401개로, 다시 2011년 635개사로 증가했다가 2016년 말 현재 605개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등록된 대리점들 중 약 15%인 100여개 석유대리점들이 1년 내에 신규 등록과 폐업을 반복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영세부실대리점들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가짜석유를 제조하거나, 가짜세금계산서(무자료 거래)를 유통시켜 석유시장을 극도로 혼탁하게 하고 국가 경제를 좀먹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대리점 업계의 문제 해결에 둔감하다. 실패한 알뜰주유소 정책을 관성적으로 고집할 것이 아니라, 기존 석유대리점을 활성화해 석유시장을 정상화해야 한다. 그리고 불법과 탈세를 일삼는 영세대리점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마련이 시급하다. 정부가 이런 문제 해결을 도외시하고 소비자의 후생만을 고집하는 방향으로 나가면 시장은 망가지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전가된다. 정부는 이제라도 신뢰할 만한 연구기관의 용역을 통해 현재 위기에 처한 석유대리점의 경영실태를 면밀히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석유정책의 문제점을 개선시켜 나가길 간절히 소망한다.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