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비변사 닮은 국정원

김우일 대우M&A 대표
입력일 2017-10-26 17:00 수정일 2017-10-26 17:00 발행일 2017-10-2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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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일 대우M&A 대표
김우일 대우M&A 대표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라는 모토로 국가안보와 국민안위를 위해 창설된 국가정보원(국정원)이 요즘 된서리를 맞고 있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하는 것이 아닌 ‘음지에서 일하고 음지를 지향’하는 우스운 꼴이 돼버린 셈이다.

국정원은 정보기관이라는 이유로 조직, 소재지, 그리고 인원수를 공개치 않도록 법으로 규정되어있다. 음지에서 더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원천적인 보호를 받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 남이 모르는 불법일탈행위가 만연하기 쉽다. 음지에 볕이 들지 않으면 곰팡이가 피게 마련인 이치다.

최근에 드러난 이 정보기관의 작태를 보면 어이가 없어 쓴 웃음이 나올 정도다. 과연 이들이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도록 권력을 위임받은 정부기관인가하는 의아심이 앞선다.

국정원이 박정희 시대 정권의 보위에 앞장서 악명이 높던 중앙정보부에서 이름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그 속성은 전혀 전혀 바뀐 게 없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필자(김우일 전 대우그룹구조조정본부장)는 작금의 국정원이 직면한 사태를 보고 조선시대의 최고권력기관이던 비변사라는 조직이 머리에 떠오른다.

이 비변사의 생성, 진화 및 종말을 되집어보면 자못 국정원과 닮았기 때문이다.

원래 비변사는 국가안위를 위해 국방문제에 대처하는 임시기구로 출범하였는데, 성종때 국경지대인 변방에 왜구와 여진의 침입이 계속되자 의정부와 병조 외에 국경지대에 정보가 밝은 관료들을 발탁하여 일을 맡긴 게 그 시작이다.

그래서 이들을 지변사재상(知邊事宰相)이라 일컬었다. 국가의 안보가 걸린 국경의 정보에 밝은 관료라는 뜻이다.

그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국난을 수습타개하기 위해 권한을 확대, 강화하여 비변사(備邊司)라는 최고의 권력기관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국가의 안보가 걸린 국경의 위험에 대비하는 관청이란 뜻이다.

그러나 이후 비변사는 국가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최고기관으로 자리잡으면서 점차 그 권력이 강화 되며 변모해갔다.

수령 임명, 군율시행, 논공행상, 공물진상 등 군정뿐만 아니라 민정에 이르기까지 국정전반에 걸쳐 모든 사무를 간섭하여 국정을 리드하는 기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심지어 국왕의 비빈간택에도 관여하는 등 정부의 전 기구를 간섭규제하는 무소불위의 기관으로 군림했다.

이 비변사가 강력해지면 조선의 정치체계와 관료조직은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본래 조선은 왕권의 정점으로 하여, 정책조정기관인 의정부, 행정집행기관인 육조, 견제기관인 삼사가 유기적 기능으로 상호 보좌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강력한 비변사가 등장하면서 정부조직체계가 무너지고 권력이 남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비변사의 횡포에 대한 원성이 잇따르면서 흥선대원군은 아들 고종이 즉위하자마자 비변사를 폐지해 버렸다.

결국 본래의 설립취지를 벗어난 권력남용행위는 부메랑이 되어 비변사의 운명을 재촉했던 것이다

비변사처럼 국가안보와 국민안위를 위해 설립된 국정원이 국정전반에 걸친 간섭과 공작을 일삼는 다면 국가운영시스템은 효율성을 잃어버리고 붕괴된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권자인 국민에게 돌아온다.

결국 국정원이 비변사와 같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기 최고권력자는 물론이고 국정원 구성원 스스로가 얼마나 반성하고 혁신하느냐에 달려있다.

김우일 대우M&A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