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나이와 낡음에 대한 고찰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입력일 2017-10-25 15:01 수정일 2017-10-25 15:03 발행일 2017-10-2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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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동국제강 상무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추석을 지내고 옛 직장 선배를 만났다. 창가에 마주 앉은 선배는 커피를 홀짝이며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얼굴에 그늘이 지더니 뜬금없는 질문이 넘어왔다. 

“늙은이들은 낡았다고 하지? 난 그렇지 않아.”

“창문을 열어 봐.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는데 그 공기가 몇 살쯤 된 것이라고 생각하나?”

80세를 눈앞에 둔 옛 선배는 이룬 것이 많은 분이었다. 매출액 1조원을 능가하는 상장기업의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고, 사원들에게 존경 받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할 일이 없다고 한다. 그 흔한 사회공헌 활동도 해봤지만 성에 차지 않는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마음껏 노시라는 권고만 할뿐 정작 만날 분도 몇 안 되고 생산적인 일에 몰입 하려해도 행복하지가 않다고 한다.

“낚시 해 봤지? 낚아 올린 물고기를 낡았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1년이 채 되지 않은 유어도, 10년 또는 100년이나 살았을지도 모르는 고기를 낚아도 우리는 그저 싱싱한 물고기를 낚았다고 하잖아.”

왜 인간만 늙으면 낡았다고 치부 하냐는 의문은 계속됐다. 대학을 막 나온 사회 초년생들은 겉보기에는 신선할지 모르지만 노인들보다 더 사고가 낡았을 수도 있다. 새로운 지식 세계를 등한시하는 젊은이들이 그들이다. 노인이라도 매달 독서와 인터넷을 통해 엄청난 양의 독서로 새로운 지식을 거두는 사람들이라면 신선한 사람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요지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정년을 앞둔 상사들에게 낙인을 찍는다. 제2의 인생 설계를 하라는 말에서부터 쉬엄쉬엄 하시라는 격려(?)가 들이친다. 당사자는 마지막 남은 직장 생활에 불꽃을 태워 보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주변이 하락치 않는다. 나이 드신 시어미가 부엌살림을 거들려고 하면, 못된 며느리 만든다며 앞치마를 거둬들이는 행동과 다를 바 없다.

물론 세대교체는 환경에 따라 재빨리 이뤄져야 한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도 새로운 젊음을 원한다. 그러나 나이와 젊음, 그리고 낡음의 해석은 분명히 달리해야 한다. 물리적으로 흐르는 세월만 대상으로 했다가는 소중한 것들을 사장시키는 사회가 될 뿐이다.

오래전, 금융기관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철강회사에 중역으로 영입된 50대 후반의 사람에게 “당신은 우리 회사의 가장 신선한 사람이다”고 소개했던 철강회사의 오너가 있었다. 그 회장은 “새로 들어 온 것이니까 가장 신선한 것이다”는 이유를 들었었다.

실제로 25세에 회사에 첫 입사한 젊은이보다 훨씬 신선한 사고를 가진 나이든 사람은 많다. 그들에게 신선하다는 말을 들려주면 매우 기뻐한다. 그들은 정년 이후에도 촉탁이란 이름으로 직장에 남아서 오랜 경륜을 필요로 하는 일에 종사하는 것을 쉽게 본다.

100세 시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사고를 바꿔야 한다. 나이는 먹고 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은 어떨까? 생각이 진보적이고 새로운 것에 앞서 있다면 젊은 것 아닌가. 과거에 연연하는 진부한 의식이 낡음이지, 나이가 많다고 낡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사회라면 오히려 그들로부터 오랜 세월 동안 터득한 값진 경험을 다음세대의 것으로 할 수 없는 결과만 초래 한다.

독일인들은 노인이 돌아가시면 “도서관 하나가 없어졌다”고 말한다. 우리는 다르다. 90세가 넘어 별세하셨다면 호상이라며 상주를 독려하고, 천수를 누리셨다고 마무리한다. 생각의 차이는 이렇게 다르다.

“나이순으로 죽는 건 아냐. 죽을 때까지 신선한 마음가짐을 가져야지. 일본이 노벨상을 왜 많이 타는 줄 아는가? 그들은 평생 한 가지 일에 몰입하는 문화가 있어.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항상 새로움을 보태기 때문이야. 지나보니 내가 제일 잘 하는걸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믿어.”

늘 깨어 있으라는 선배와의 대화를 끝내고 찻집을 나서자 찬 밤공기가 몰려왔다. 그 공기는 신선했고 선배의 뒤모습도 신선했다.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