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메르켈 4연임이 말하는 것

박종구 초당대 총장
입력일 2017-10-11 10:00 수정일 2017-10-11 14:59 발행일 2017-10-0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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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구 초당대 총장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최근 총선에서 승리해 4연임 고지에 올라섰다. 콘래드 아데나워, 헬무트 콜에 이어 4번 총선에 승리한 지도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메르켈이 이끄는 기민·기사당 연합의 득표율은 2013년 41.5%에서 30%대로 크게 떨어진 반면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제 3당으로 부상해 전후 최초로 의회에 진출하게 되었다.

총선 결과는 그녀의 실용적 노선에 대한 재신임으로 평가된다. 메르켈 총리는 좌파를 끌어안은 실용주의로 2009, 2013년 두차례 대연정을 구성해 안정적으로 국정을 이끌었다. 좌파의 주요 이슈를 선점하고 중도파를 끌어안는데 성공함으로써 국가통합의 적임자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최저임금제 도입, 탈원전 정책 추진, 동성결혼 반대 입장 철회 등을 통해 좌파의 입지를 크게 약화시켰다. 갈등을 피하고 조화를 추구하는 합의지향적 독일 정치를 완성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다음으로 원칙의 리더십에 대한 신임으로 볼 수 있다.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한다’는 것은 양보할 수 없는 정치적 신조다. 재정위기에 빠진 그리스에게 구제금융의 대가로 엄격한 긴축을 요구한 것도 그 때문이다. 유럽연합과 유로화에 대한 헌신은 독일이 유럽의 자유민주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굳센 믿음에 근거한다. 그녀는 유럽의 단합을 국가이성의 일부로 이해한다. “유로가 실패하면 유럽이 실패한다”는 말에서 유럽연합에 대한 결연한 의지가 확인된다. 2015년 이래 150만명의 난민을 수용한 결단 역시 기독교인의 도리로 종교적 신념의 실천으로 볼 수 있다.

신 정부에는 여러 가지 험난한 과제가 앞에 놓여 있다. 첫째로 난민에 대한 독일 국민의 피로감이다. 지난 8월 실시된 IRP 여론조사에 따르면 절반 이상의 응답자가 테러리즘, 난민 문제를 가장 심각한 이슈로 받아들였다. 마르틴 슐츠 사민당 총재와의 TV토론에서 3분의 1 이상이 이민 문제에 할애되었다. 작년 난민 수용자가 28만명으로 줄었지만 이민자에 대한 국민 감정은 미묘하다. “모든 난민은 돌아가라”는 슬로건이 곳곳에 널려있다.

둘째로 제3당으로 부상한 AfD의 존재다. 2013년 창당 이후 13개 주 의회에 진출했다. 극우 정당의 출현으로 독일 정치의 우(右) 클릭 현상이 심화될 전망이다. 사민당이 유럽의회 의장 출신을 새 지도자로 영입했음에도 불구하고 패배한 것은 이러한 우경화 흐름과 무관치 않다.

셋째로, 심화되는 경제적 불평등 문제다. ‘어젠다 2010 개혁’으로 수출, 고용, 투자 등이 호전되고 독일은 유럽 경제성장의 엔진으로 우뚝섰다. 지난 5월 실업율은 통일 이후 최저치인 5.7%까지 떨어졌다. 제조업 고용비중이 19%나 되고 무상교육, 실업수당 등 사회 안전장치가 탄탄하다. 체계적 직업교육의 기회도 제공된다.

그러나 성장 과정에서 불평등이 심화됐다. 인구의 약 15% 정도가 빈곤선을 간신히 상회하고 있다. 인구의 7.2%가 정부 보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고용은 늘어났지만 700만명이 건강보험도 없는 미니 잡 형태다. 150만명이 푸드뱅크 수혜자다. 특히 70-80대 노인층의 빈곤 문제가 새로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메르켈이 이민과 불평등에 대한 유권자 분노에 어떻게 대처할지 지구촌의 관심이 뜨겁다.

박종구 초당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