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자동차 급발진, 진전없는 대책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 겸 김필수 자동차연구소 소장
입력일 2017-09-10 15:14 수정일 2017-09-10 15:16 발행일 2017-09-1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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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 겸 김필수 자동차연구소 소장

얼마전 자동차 급발진 피해자 모임 회원이 1000명이 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급발진 사고는 계속 발생하고 있으며, 필자에게는 끊임없이 문의가 온다. 하나하나가 억울한 사연들이다. 그러나 필자도 심각한 경우 언론에 알리는 것 외에는 해줄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급발진 사고의 경우 국내에서 연간 100건 내외가 발생한다고 조사되나 실제로는 약 20배 이상인 2000건 정도로 판단된다. 아예 액땜했다며 넘기거나, 소송에서 이길 확률이 없어 신고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자가 회장으로 있는 자동차 급발진 연구회의 분석에 따르면 전체 급발진 사고의 80%는 운전 실수이고, 나머지 20% 정도가 실제 급발진 사고다. 그리고 전체 발생 건수의 95%는 가솔린엔진과 자동변속기 기반 자동차에서 발생하며, 나머지가 디젤엔진과 자동변속기 계통이다. 당연히 LPG엔진도 가솔린 엔진과 같이 불꽃 점화방식이어서 같은 비율로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동차 급발진은 지난 1980년 초 자동차에 전자제어장치를 장착하면서 발생되었다고 본다. 전자제어장치가 고장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수년 전 자동차 급발진 원인에 대한 전자제어장치의 이상동작이 영향을 끼친다고 일부 입증하면서 천문학적인 보상금을 받기도 했다.

급발진 사고에 대해 미국에서는 보상을 받는 경우가 많은 데, 우리는 왜 단 한번도 재판에서 승소하거나 보상을 받은 경우가 없을까? 알아서 져주는 법에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운전자가 자신이 실수를 하지 않고 자동차의 결함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구조인 반면 미국은 재판 과정에서 자사 차량에 결함이 없음을 메이커가 입증해야 하는 구조다. 비전문가인 운전자가 사고 원인을 확인하고, 입증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단순한 기계장치의 고장은 증거가 남지만 전자제어장치의 이상은 재연도, 입증도 할 수 없다.

물론 누구 책임인지를 알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급발진 연구회에서는 3년 전에 2009년 말부터 출시된 자동차의 경우 ‘OBD2’라고 하는 장치를 통해 일종의 블랙박스를 달면 누구 책임인지 알 수 있다고 알려왔다. OBD2는 연구회에서 개발해 국가 인증을 받은 장치다. 이 장치는 운전자가 브레이크나 가속페달 등 운전행태를 면밀하게 알 수 있고 차량의 상태도 확인하면서 정확하고 신뢰성 높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현재 차량에 부착돼 있는 자동차사고기록장치인 ‘EDR’은 운전자의 행태 정보가 한정돼 있고 차량의 상태만 일부 알 수 있으며, 에어백이 터지지 않으면 기록되지 않는 등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장치다. 일각에서는 ‘메이커의 면죄부’라고 비아냥거릴 정도다.

예전에 어느 법원에 근무하는 판사가 연구회에서 개발한 장치를 구입, 부인 몫까지 장착했다. 그 분 말씀이 ‘이 장치라도 있으면 문제가 발생할 시 입증할 수 있다고…’. 아예 국내에서 생산하지 않는 수동변속기 차량을 이용하든지 아니면 발생빈도가 낮은 디젤 차량을 구입하든지. 이러면 미세먼지 등 정부의 시책과 반대 방향이 되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사고방지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대책을 마련하자.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 겸 김필수 자동차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