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알뜰주유소 평가’ 제대로 해보자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입력일 2017-08-23 15:16 수정일 2017-08-23 15:17 발행일 2017-08-2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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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여당과 정부가 지난 달 27일 국회에서 실무 당정협의를 갖고 이명박 정부 때부터 추진해 온 알뜰주유소 정책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당정은 리터당 35원 저렴한 것으로 알려진 알뜰주유소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일반주유소의 가격인하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에너지비용 절감 대책 당정 협희를 통해서 나온 이러한 방침에 관해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사실, 석유업계에서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 알뜰주유소 정책에 전환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시장 논리를 무시한 알뜰주유소의 문제점이 지적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최근 들어 한국석유공사가 주관하는 알뜰주유소 2부 시장 사업자 선정이 두 차례 유찰되면서 포퓰리즘 정책인 알뜰주유소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민간주유소보다 저렴한 기름을 구할 방법이 묘연해진 것이다. 석유업계에서는 석유공사가 턱없이 낮은 가격기준을 제시해 유찰된 만큼, 재입찰을 불투명하게 내다보고 있다. 재입찰을 해도 기준가격이 조정되지 않는 한 낙찰 받는 사업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번 유찰의 원인은 지난해에 비해 대폭 줄어든 2부 시장 공급물량과 석유공사의 턱없이 낮은 기준가격 제시다. 알뜰주유소는 정유사가 주유소까지 직접 공급하는 1부 시장과, 석유공사가 직접 공급하는 2부 시장으로 나뉜다. 1부 시장은 정유사가 유류를 직접 공급하는데 비해 2부 시장은 석유공사가 석유대리점처럼 유통을 담당하는 구조다. 석유공사가 대리점 역할을 하려니 저장탱크 임대와 수송 등 비용부담이 생긴다.

2부 시장의 경우 지난해 입찰물량이 휘발유는 1억9000만 리터, 경유는 1억3000만 리터였던 것이 올해는 휘발유 3000만 리터, 경유 3000만 리터로 20~30% 줄었다. 이는 한 개 석유대리점이 공급할 수 있을 정도의 적은 물량인데 정유사 입장에서는 낮은 가격을 감수하면서까지 참여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석유공사 희망 가격과 정유사의 시장 사격이 더 이상 합치될 수 없는 수준에 다다른 것이다.

새 정부는 원점에서부터 알뜰주유소에 대한 정책에 접근해야 한다. 당초 알뜰주유소는 일본의 종합상사나 대형 유통업체들처럼 바잉 파워를 활용, 정유사로부터 싼 가격에 기름을 대량으로 구입해 시장에 공급함으로써 유가를 인하하겠다는 의도로 출발했다. 하지만 알뜰정책 시행 5년이 되어가지만 한국의 석유시장은 이와는 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주유소들의 휴업과 폐업은 갈수록 증가해 수많은 일자지가 사라지고, 유통 단계인 석유대리점 또한 그 기능을 현재 석유공사가 상당부분 흡수하는 바람에 영업이익이 0.2 %대에도 못 미쳐 유통단계의 피폐화를 가져온 것이다.

알뜰 정책으로 주유소 영업이익율은 1.81%로 악화돼 도소매업 평균 5.2%(통계청 ‘14년도 자료)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더욱이 알뜰주유소가 주로 분포한 지방의 경우 영업환경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도로공사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여 고속도로 주유소의 최저가 판매를 강요하는 바람에 국도변 주유소들은 그야말로 곡(哭)소리가 날 지경이다.

알뜰정책은 도입 이후 제대로 평가를 받아본 적이 없다. 정부는 알뜰 정책이 가격인하 효과가 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업계에서는 시장을 왜곡하는 정책이니 만큼 하루 빨리 개선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국내외 유가의 하향 안정세가 지속되면서 알뜰주유소 무용론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이제라도 알뜰주유소 정책에 대한 공론화와 객관적 평가가 필요하다. 새 정부가 출발한 이 시점에서 정부와 석유업계, 학계가 참여하는 공론화 기구를 만들 것을 주장한다.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