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연예계 '금수저 흙수저'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입력일 2017-08-07 15:46 수정일 2017-08-07 15:48 발행일 2017-08-0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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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최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로스쿨 제도 하에 법조인 신분의 세습화 현상이 현대판 음서제로 불리면서 사법시험 존치론과 맞물리기도 했다. 최근 TV를 보고 있자면 전근대적인 음서제가 연예계에서도 불거지고 있다. 연예인의 자녀, 배우자 등 가족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손쉽게 지명도와 인기를 얻으면서 오랜 기간 배고픔과 불확실성 속에서 데뷔를 준비하는 무명 연예지망생, 연습생 등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2000년대를 전후해 연예인들의 소득 및 사회적 지위가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연예계 진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의 경쟁률이 증명하듯 연예인 지망생 100만 명시대다. 하지만 이들 중 TV 출연 기회를 잡는 경우는 1%에도 못미친다. 가히 ‘연예 고시’라 불릴 만하다.

상황이 이러니 연예인 가족 예능이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연예인 자녀 6명이 최소한의 경비만으로 오지에서 생활하는 리얼리티 ‘둥지탈출’, 연예인 부인들이 남편 없이 여행을 떠나는 ‘싱글와이프’를 비롯해 ‘슈퍼맨이 돌아왔다’, ‘오 마이 베이비’, ‘자기야’, ‘아빠를 부탁해’, ‘동상이몽’, ‘유자식 상팔자’, ‘미운 우리 새끼’ 등 예능에서 연예인 가족들은 별다른 검증절차도 거치지 않고 손쉽게 출연하기 때문이다. 이는 연예인의 지위 세습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심지어 가수 박남정의 딸 박시은은 아버지 덕분에 예능에서 이름을 알린 후 연기력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니시리즈에 캐스팅됐다. 조재현의 딸 조혜정 역시 아버지의 유명세로 배우로서 인지도를 높였다. 최민수의 부인 강주은 등도 방송인으로서 자리잡고 홈쇼핑에 진출했으며 김건모, 박수홍 등의 어머니는 CF출연이 예정돼 있다. 그야말로 온 가족들이 연예인으로서 호사를 누린다.

과거에도 이덕화, 전영록, 허준호, 독고영재, 이혜영, 김혜림 등이 그들보다 더 유명했던 아버지, 어머니의 후광을 업고 단 시간에 연예계에 데뷔할 기회를 얻기는 했다. 하지만, 노래, 연기 등 독립적인 연예콘텐츠만으로 진검 승부하던 당시 대중들은 연예인 2세들에 대해 누구누구의 아들, 딸이라기보다는 각자의 실력을 가감 없이 검증했다.

요즘처럼 예능 몇회 출연만으로도 쉽게 인지도를 올릴 수 있는 시대에는 어떠한 검증 장치도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별다른 뒷배도 없이 기획사 연습실에서 또는 반지하 골방에서 연예계 데뷔를 위해 땀을 뻘뻘 흘리는 지망생들의 가슴이 무너지는 것은 그래서다.

하정우, 조승우 등은 연예인 아버지의 존재를 숨기고도 실력 하나만으로 각 분야에서 최고의 지위에 올랐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들 최유성의 연예인 세습으로 입방아에 오르는 최민수가 출연하는 ‘죽어야 사는 남자’에서 브로맨스 연기로 주목받고 있는 조태관도 가수 조하문의 아들이자 최수종·하희라의 조카다. 연예인 가문의 일원으로 충분히 누릴 수 있는 도움을 거부한 채 혈혈단신 연예계에 입문해 성장하고 있다.

결국 연예계의 금수저 시비는 연예인들의 기득권 및 제작진의 안일한 자세에서 비롯된다. 불투명하고 불공정한 캐스팅 및 연예인 가족 콘텐츠의 남용을 자제한다면 흙수저 연예인 지망생의 눈물은 닦아줄 수 있을 것이다. 세습은 그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청산해야할 적폐에 해당한다.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