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병사와 외인사, 권력이 진짜 무서워 해야할 것은

김우일 대우M&A 대표
입력일 2017-06-26 12:00 수정일 2017-06-26 15:21 발행일 2017-06-2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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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일 대우M&A 대표
김우일 대우M&A 대표

2015년 11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중태에 빠진 한 농민이 2016년 9월25일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317일만에 급성신부전으로 사망했다. 그의 이름은 백남기로 직업은 농민이었지만 1968년 대학시절부터 유신독재와 군사쿠데타에 맞서 투쟁해왔던 사람이었다.

국립병원인 서울대병원에서는 그의 사망진단서에 사인을 병사로 기재하였고 이를 두고 유족 및 시민단체는 경찰의 물대포라는 국가폭력에 의해 숨졌다며 외인사를 주장하며 국가권력과 첨예하게 맞섰다.

가까스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후 서울대병원측은 외인사로 사망진단서를 수정하면서 고(故) 백남기씨는 자유로운 영면의 길을 들어섰다.

필자(김우일 전 대우그룹구조조정본부장)는 이 사망원인을 둘러싼 공권력과 시민의 싸움에서 363여년전 조선 인조의 장남으로 태어나 병자호란의 치욕으로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가 9년 동안 인질로 생활했던 소현세자를 떠올렸다. 소현세자는 인질로 끌려갔지만 장차 조선을 개혁통치할 청나라의 문물제도에 강한 의지를 보였고 청나라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의 이러한 행보는 친명배청의식이 강했던 아버지이자 국왕이던 인조의 눈밖에 나게 되었고, 귀국한지 2개월만에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

왕조실록에 소현세장의 사인은 병사로 기록되어 있으나 그 상태를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적고있어 지금까지 죽음원인에 의혹을 더하고 있다.

“온몸이 전부 검은 빛이고 일곱구멍에서는 선혈이 흘러나와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같았다.”

친청파인 소현세자를 옹호하고 친명파인 국왕 인조를 적대했던 당시 청나라의 태도는 인조에게 왕 교체라는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이 때문에 인조는 세자를 후계자라고 보기보다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정적으로 보았고 이에 소현세자를 제거했다는 독살설이 분분했다.

소현세자의 죽음 뿐만아니라 서 보듯이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권력에 의해 발생한 수많은 죽음이 자살, 병사 등으로 둔갑되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권력이란 것이 한번 손상을 입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어, 진실을 감추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는 어떠한 변명과 핑계도 소용없다.

죽음을 당한 당사자나 유가족뿐만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백성 또는 국민들이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나선다면 그 죽음은 죽은 것이 아니라 아직 살아있는 것이다.

죽은 목숨이 살아 있으니 이를 둘러싼 갈등과 소요로 인해 그 사회는 엄청난 댓가를 치러야 한다. 설혹 진실이 규명되지 않더라도 그 죽음은 역사의 의혹으로 남는다.

삼국지에 ‘死孔明能 走生仲達(사공명능 주생중달)’이란 얘기가 있다. 죽은 제갈공명이 산 중달을 이겼다는 말인데, 사마중달도 뛰어난 전략가이지만 죽은 공명의 지혜를 무서워했다는 뜻이다.

이 고사대로 권력에 의해 의문의 죽음을 당한자가 결국은 그 권력을 쫓을 것이다. 따라서 권력자들은 진실을 원하는 백성의 목소리를 공명의 지혜만큼이나 두려워 해야 할 것이다.

김우일 대우M&A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