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붕괴 악몽 재현된 ‘그렌펠타워’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입력일 2017-06-25 14:43 수정일 2017-06-25 14:45 발행일 2017-06-26 23면
인쇄아이콘
김종대 동국제강 상무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캐닝타운 오피스텔의 붕괴

1968년 5월 16일. 파리에서는 미국과 월맹의 평화회담이 열리고 있었다. 미연합군과 월맹의 오랜 전쟁이 끝나가는 시기였다. 전세계가 이 회담을 숨죽이고 지켜볼 때 긴급 뉴스가 타전됐다.

영국 런던 캐닝타운에 소재한 높이 60m의 24층 오피스텔이 붕괴된 것이다. 이 사고는 18층의 한 가정에서 일어난 작은 가스 폭발이 시발점이다. 가스가 폭발되자 벽 패널(wallplate)이 손상되고, 벽 패널과 바닥 패널이 무너지면서 그 충격으로 22층에서부터 2층까지 연쇄 붕괴됐다.

철강산업의 원조,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구겨버린 공동주택 붕괴 사건은 유럽 전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런던청은 원인을 찾기 위해 시공 역순으로 오피스텔을 철거했다.잔해를 파헤치자 벽과 바닥 사이에 채워져 있어야 할 모르타르는 없고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 흔한 철근, 앵글 등의 철강재 사용도 경비 절감이라는 미명 아래 제외됐다.

런던청은 20년에 걸쳐 프리패브 공법(prefabricated construction)으로 시공한 주택과 건물 약 3000여 채를 해체했다. 1991년 잉글랜드 살포드의 6개 타워를 동시에 폭파하는 장면은 고스란히 언론에 공개됐다. 다시는 부실공사를 하지 말자는 영국인의 다짐이었다.

#50분 만에 불타버린 24층 아파트

영국 테리사 메이 정권은 지난 총선에서 과반 득표에 실패하고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 이 와중에 런던시 켄싱턴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이 화재는 지난 14일 새벽 1시경 일어났다. 화마에 휩싸인 빌딩은 런던시 서쪽 화이트 시티의 라티머 로드에 있는 24층 아파트 ‘그렌펠 타워’다. 이 타워는 49년 전 어이없이 무너져 내린 캐닝타운의 오피스 타워와 마찬가지로 24층의 주거 건물이며, 화재원인도 비슷했다.

TV 뉴스화면을 가득 채운 불길과 검은 연기는 단 50분 만에 ‘그렌펠타워’를 몽땅 불태워버렸다. 120가구에 600명 정도 살고 있던 서민들은 갑작스런 화재에 속수무책이었다.

1974년 지어진 그렌펠 타워는 2016년에 대대적인 외장재 수리 공사를 마쳤다. 보수공사에 쓰인 우레탄 외벽마감재는 화재가 발생할 경우 연료를 전방위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고 한다. 패널과 외벽 사이의 구조물 공간은 불길을 빠르게 상층부 혹은 좌우로 확산시키는 통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은 12미터 이상의 빌딩에 폴리우레탄 단열마감을 금지했다.

#철은 人災를 막아주는 버팀

유럽에는 프리패브 공법의 조립식 건축물이 많다. 2차 대전 이후 도시 재건과 심각한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저렴한 비용으로 단기간에 빌딩이나 아파트를 건설한 결과다. 이런 건물은 반드시 벽 패널과 바닥 패널 사이의 접합부에 시멘트와 모래를 혼합한 그라우팅을 채워야 하며, 철근으로 패널을 단단히 묶어 주는 보강공사를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 그렌펠 타워 같은 공동주택도 이러한 방법으로 시공돼 한다.

9·11 테러 당시 뉴욕 무역센터 건물은 H빔 등의 철강재가 화재 확산을 오랜 시간 지연시켜 많은 인명이 구조될 수 있었다. 철은 안전을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인데, 꼭 써야 할 때 빼먹거나 값싼 외장재로 포장하는 것이 문제다.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