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아마추어 時人 입문기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입력일 2017-05-31 16:24 수정일 2017-05-31 16:26 발행일 2017-06-0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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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내 삶의 큰 변화가 시작된 날이다. 나이가 들면서 시가 좋아져 몇 년 전부터 내가 좋아하는 기성 시인의 시를 친구들 밴드에 소개하기 시작했다. 시 전문 H밴드로부터 초청이 와 가입하고 좋아하는 기성 작가의 시를 올렸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봐주겠지만 다음번엔 안 된다’는 댓글이 올라왔다. 자기 밴드는 자작시를 올리는 곳이며 기성 작가의 시를 동의 없이 올리면 저작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밴드를 탈퇴할까 고심하다가 차라리 이 기회에 한번 저질러 보자는 심산으로 자작시 한 편을 써서 올려보았다. 고교 1학년 때 문예지에 시를 올려 본 이후 거의 40년 만에 쓴 시였다. 내 이름으로 올리려니 왠지 쑥스러워 필명을 사용했다. 

첫 시부터 댓글은 관대했다. ‘좋아요’, ‘최고에요’라는 댓글들이 이어졌다. 그런 반응을 접하자 어안이 벙벙해지고 공중으로 부웅 뜬 기분이었다. 이를 계기로 이 밴드에 정을 붙이고 시작(詩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시의 세계에 빠져 저녁을 보냈다. 내 시의 시어들에 무미건조함을 느꼈지만 시작 활동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것이라 위로했다. 시를 제대로 공부해 본적이 없고, 또 습작이라 해 봐야 학창시절 잠깐이었으니 제대로 된 시어가 나올 리 만무했다. 딱히 스승으로 모실만한 시인도 없으므로 나름대로 방안을 강구해 독학하기로 했다.

매일 기성 시를 다섯 편 필사하고, 무조건 한 편의 시를 쓰는 것이다. 그렇게 1년만 하면 제대로 된 시의 세계에 근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동안은 시의 완성도는 물론, 댓글에도 크게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필사는 백석 김소월, 윤동주, 정지용, 서정주, 김영랑, 조지훈, 장석주, 황동규, 함민복, 문정희, 이성복, 황지우, 정호승 등 기라성으로 우뚝 선 시인들의 시로 했다. 그리고 거의 하루 한 편의 시를 밴드에 올렸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자 고교동창회 밴드에 본명으로 올리기 시작했다. 어떤 후배는 기성 시 보다 낫다고 치켜세워 줬고 가장 부담스럽게 생각했던 고교친구들도 공감과 함께 격려 어린 댓글을 달았다. 그러던 차에 한 문학밴드로부터 등단이라는 생각지 못한 영예도 안게 되었다.

아직 당당히 내 놓을 작품이 없는 만큼 매일 다섯 편의 필사와 한 편의 시 쓰기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흔히 시는 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 한다. 산문이 산책이라면 시는 무도(舞蹈) 즉, 춤을 추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나는 그림과 춤에 대해 깊이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좋은 그림과 춤은 장르와 시대를 뛰어넘어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좋은 시도 마찬가지 아닐까.

한 가지 추가할 사항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왜 시를 쓰느냐’는 시인의 사명일 것이다. 나는 시를 쓰는 일이 자아성찰의 계기라고 생각한다. 지나온 삶을 반추해 보고 후회 없는 삶을 위해 한 발짝 나아가보려 하는 것. 그것이 시인의 사명이자 시가 시인에게 주는 축복이라 생각한다.

시인은 열여섯 소녀의 감성으로 세상을 사랑하고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성직자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의 길, 굉장히 설레는 길임에 분명하다.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