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도시바 몰락의 원인은?

정인호 GGL 리더십그룹 대표
입력일 2017-05-15 14:46 수정일 2017-05-15 14:47 발행일 2017-05-1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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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GGL 리더십그룹 대표

일본의 자존심인 도시바가 몰락의 위기에 처했다. 지난 4월 11일 도시바는 5325억엔(약 5조 5600억원) 영업적자와 2256억엔(약 2조 3500억원) 자본잠식된 회계법인의 실적을 발표했다. 1875년 일본 도쿄 긴자에 설립한 전신기 생산 공장을 모태로 142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바는 일본 최초로 냉장고와 세탁기, 컬러TV를 출시했고 세계 최초로 노트북과 낸드플래시 반도체를 개발한 일본의 대표적 기업이었다. 이런 도시바가 왜 벼랑 끝에 몰렸을까?

도시바가 위기상황으로 몰리게 된 건 원자력발전사업의 실패가 큰 원인이다.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건을 계기로 전 세계에서 반핵 여론이 확산돼 미국원자력규제위원회를 중심으로 각 주정부가 원전 규제 정책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적용대상에는 도시바도 예외가 아니었다. 동일본 지진으로 불러온 나비효과가 천문학적인 부채를 안게 만들었다.

사실 도시바의 위기는 조직 내부에 실질적 원인이 있었다. 내부 경영권 다툼으로 인한 파벌주의, 상명하복의 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관료화가 되고 분식회계까지 자행했다. 과거 성공에 취해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변화에 둔감했으며 지름길만 좇다가 이제는 역사 속에만 존재하게 될 처지에 놓였다.

689년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을 모아 만주 지방에 ‘발해’라는 나라를 세웠다. 멸망한 고구려 유민들이 당시 군소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유목민족을 규합해 만든 나라로, 전성기 시절에는 영토의 넓이가 지금의 북한 땅을 포함해 중국의 요녕성, 요동반도, 만주, 연해주까지 뻗었으며 한때 ‘해동성국’이라 불릴 정도로 번창했다. 그토록 강성했던 발해는 926년 거란에 의해 불과 보름만에 수도를 내어준 채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발해의 멸망 원인은 명확히 알려지지 않지만 20세기 들어 활발한 연구를 한 결과 발해 내부에서 오랫동안 왕위 계승 다툼이 벌어져 지도층이 분열됐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이처럼 발해를 포함한 모든 인류 역사의 패망을 살펴보면 외부 세력의 농간질 보다는, 내부 세력들 간의 갈등과 반목으로 더 나은 역사를 열지 못하는 것을 수없이 봐왔다. 104년의 역사를 가진 샤프, 13년간 휴대전화 시장점유율 세계 1위인 노키아, ‘필름의 대명사’로 130년의 전통을 가진 코닥 등이 실패한 이유도 다르지 않다.

캘리포니아에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레드우드라는 나무가 살고 있다. 높이가 100미터이며 성장도 빨라서 묘목이 해마다 1.8m씩 자란다. 다른 나무들은 폭풍우가 불어오고 비바람이 치면 뿌리가 뽑히고 부러졌지만 레드우드는 공룡시대부터 오랜 세월 동안에 모든 비바람과 수많은 지진을 견뎌내고 현재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어떻게 이 나무가 이렇게 흔들리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알아보니 그 뿌리가 땅 밑으로 깊이 들어가 큰 바위를 안고 있었다. 위에서 아무리 강한 바람이 불어도 큰 바위를 안고 있으니 흔들리지 않고 1000년이 넘도록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글로벌 기업에게 필요한 것은 조직 내부에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당장의 기술과 이윤으로 덩치를 키우기보다 1000년이 넘도록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깊은 뿌리를 내리는 것 말이다.

정인호 GGL 리더십그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