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알뜰정책' 버려야 '석유시장'이 산다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입력일 2017-05-01 14:34 수정일 2017-05-01 14:35 발행일 2017-05-0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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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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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국내 석유시장에서 석유대리점은 현재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의 50% 이상을 공급하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리점이라 하면 메이커와 소비자 사이에서 중간 브로커 역할을 하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석유분야는 그렇지 않다. 정유사로부터 석유를 적기에 대량으로 매입, 주유소에 저가에 판매하여 유류를 안정적으로 공급함과 동시에 유가를 인하하는 순기능 역할을 해왔다. 매출 규모도 중견기업 수준이어서 석유판매회사라고 부르는 것이 오히려 적절할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석유대리점들이 최근 몇 년간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정부의 왜곡된 알뜰주유소 정책으로 시장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이익은커녕 적자경영을 하는 대리점들이 늘고 있다.

정부는 기름 값 인하를 명목으로 공기업인 석유공사를 석유유통업에 진출시켜 알뜰주유소 유류 공급자 역할을 맡겼다. 또한 인위적으로 석유전자상거래 제도라는 것을 만들어 가격경쟁을 촉진하면서 석유대리점의 수익과 직결되는 공급가격을 하향 평준화시켰다.

국내 석유시장은 세계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전문가들은 국내 적정 주유소를 7000여 개에서 8000개 정도로 보고 있는데 현재 1만2500여 개의 주유소가 있어 과잉공급 상태다. 주유소 단계에서 피 튀기는 경쟁 때문에 우리나라 석유시장에서는 메이저인 엑슨모빌이나 BP, 로열더치셀 등의 폴을 찾아볼 수 없다. 국내에 진출해 봤자 이익이 없는 시장구조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가격경쟁을 더 촉진시키겠다며 알뜰주유소 정책을 도입했다. 현재 정부는 알뜰주유소의 가격인하 효과가 매우 크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가 지금까지 쏟아온 1000억 이상의 국민세금을 생각하면 가격효과는 매우 미미하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알뜰 정책을 고수하는 정부와 석유유통시장 주체인 사업자들 간에 소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더 큰 문제다. 석유유통 사업자인 대리점과 주유소들은 정부의 정책 개선을 촉구하는 항의집회에 이어 건의서를 주기적으로 전달해 오지만 정부는 미동도 않고 있다. 알뜰주유소가 도입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정부가 내세우는 공정한 석유유통시장 질서는 없고, 갈수록 석유시장의 유통질서만 교란되고 있을 뿐이다.

특히, 공기업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고속도로 주유소 경영에 부당 개입하는 도로공사의 행태는 그 심각성에 도를 넘어섰다. 현재 고속도로 주유소 운영자들은 통상 5년 단위로 도로공사와 운영계약을 갱신하고 있다. 그런데 공사가 이를 볼모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영업 수익마저 포기하고 기름을 판매하도록 강요하며, 고속도로 주유소 운영자들을 사실상 사지로 내몰고 있다. 또한 고속도로 인근지역에 위치한 영세 주유소들은 고속도로 주유소와의 경쟁에서 버티지 못해 연쇄적으로 도산을 하고 있다.

정부는 유가인하라는 명분에 함몰되어 알뜰정책의 고수에만 전념할 게 아니라, 그 여파로 신음하고 있는 600여 대리점업자와 1만2500여 개 주유소 사업자들의 아픔에 진정성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