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장례식장의 '어떤 위로'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입력일 2017-04-27 15:34 수정일 2017-04-27 15:38 발행일 2017-04-2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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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동국제강 상무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몇 해 전 지인의 부친께서 별세하셨다. 고인은 철강 산업 초창기에 원료 수출입에 종사했던 거상이었다. 생존에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 왕래가 많았던 만큼 장례식장은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상을 치르고 수개월이 지난 주말에 가까운 지인들이 상주를 초청하여 골프 회동을 가졌다. 

운동 중에 고인의 고교동창생과 상주의 고모가 들려주었던 두 가지 사연은 이날 함께 운동하던 일행 모두에게 ‘빵 터지는 웃음’을 주었다. 라운딩 중에 흔히 오가는 그런 흥밋거리가 아닌 1930년대에 출생한 어른들의 ‘청춘 이야기’다.

첫 번째 이야기.

고인을 화장할 때 유족들이 어찌나 오열을 하는지 보다 못한 고인의 친구 중 한 분이 옛날 고교시절의 이야기를 슬그머니 꺼내더란다.

“자네 아버지가 연애할 때 자네 어머니 집으로 찾아갔는데 두 사람의 만남을 싫어하는 언니(고인의 처형)가 오는 거라. 그래서, 자네 아버지는 허겁지겁 변소로 숨었는데 그만 신발 한 짝을 옛날 재래식 변소통 안으로 떨어뜨렸지.” 여기까지 이야기가 무르익자 상주들은 부모님의 연애 이야기에 이끌려 눈물 콧물을 씻어내고 귀를 기울일 수밖에….

“구두 한 짝만 신고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겠나. 그래서 자네 아버지는 구둣방으로 달려가 구두 한 쪽만 사자고 흥정을 한거야. 돈이 없을 때니까, 한 쪽만 사면 싼 줄 알고 그랬던 거지.”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구둣방 주인은 노발대발하면서 “내 구두 장사 30년에 구두 한 쪽만 팔라는 사람은 난생 처음이다. 상이군인이라 해도 구두 한 쪽은 절대 못 판다”고 핏대를 올리더란다.

“결국 자네 아버지는 약국으로 달려가서 붕대로 한 쪽 발을 칭칭 감고 어머니를 만났는데 자네 어머니가 깜짝 놀랐을 거 아닌가. 고인은 시치미 뚝 떼고 ‘마. 운동하다 다쳤다’고 거짓말을 했겠지…. 이런 거짓말은 얼마 안 가서 들통이 났는데, 암튼 고인은 자네 어머니를 엄청 좋아했었어.” 이야기가 끝나자 상주들의 애통함은 많이 수그러졌다고 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고인의 여동생이 전한 말이다. 고인은 친구를 엄청 좋아하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였단다. 고교 고학년이 되자 오빠는 여동생에게 신신당부를 하더란다.

“숙아(가명)! 내 오늘부터 공부할 끼다. 친구가 찾아오면 없다 해라.” 오빠는 면도칼로 한쪽 눈썹을 밀어 버리고 단단한 각오를 하면서 책상에 딱 붙어 앉았다고 한다. 그 모습에 여동생도 오빠를 따라 공부 분위기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몇 분도 안 돼서 오빠 친구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명석(가명)이 있나!” 여동생은 오빠의 분부대로 “오빠 없는데요”라고 막 이야기하려던 차에 오빠는 한쪽 눈썹을 손으로 가린 채 화급히 뛰어 나오면서 “내, 예 있다!”고 하더란다.

당시 상황을 조카들에게 전하는 고모는 쓴웃음을 애써 참으면서도 잠시 회상의 눈빛을 허공에 던지더란다. 장례식장은 엄숙함과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는 의례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인을 회고하는 한담을 통해 오열하는 상주와 유족을 위로하는 위트도 필요하다. 그것이 결례의 도를 지나치지 않는다면 고인을 회상하는 좋은 기억이 될 수도 있다.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