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항생제로 인해 장내 유익균이 죽으면 기억력도 감퇴한다

조진래 기자
입력일 2017-04-19 18:57 수정일 2017-04-19 18:57 발행일 2017-04-18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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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본 -김석진소장님사진1
김석진 좋은균연구소 소장

누구나 한 번쯤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복통을 앓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뇌와 장이 긴밀하게 반응한 경험을 이론적으로 증명한 것이 ‘뇌-장 축 (brain-gut axis) 이론’이다.

‘뇌-장 축 이론’은 뇌와 장이 서로 연관되어 있어, 뇌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신경계를 타고 장으로 전달돼 장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이다. 최근 전세계 의학계는 ‘뇌-장 축 이론’에 뜨거운 관심을 보내고 있다. 뇌와 장 사이에 발생하는 커뮤니케이션이 뇌에서 장으로 보내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쌍방향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이론에 따르면 장이 어떠한 상태인지에 따라 다양한 정서적, 정신적 변화가 생길 수 있으며 우울증, 집중력 장애, 심지어는 치매의 원인까지도 장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이렇듯 뇌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장의 상태, 즉 장 환경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장내세균이다.

장에 어떤 균이 살고 있는지가 뇌의 건강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다양한 논문을 통해 입증되고 있는데, 최근 항생제 섭취로 인해 장내세균이 파괴되었을 경우 뇌 시상하부에 영향을 주어 기억력이 감퇴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논문이 발표돼 이 자리를 빌어 소개하고자 한다.

독일 맥스-델부르에크 의학센터의 수잔 울프 교수는 10 여년전 면역체계가 뇌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꾸준히 연구를 해 오던 중 그 기전을 설명하는 열쇠를 장에서 찾았다. 쥐들에게 항생제를 투여해 장에 세균이 거의 없는 상태로 만들자 쥐의 기억력 감퇴가 관찰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쥐들의 뇌 시상하부에 새로운 뇌신경 세포 형성이 감소하는 것도 관찰되었는데, 시상하부는 기억을 담당하는 중요한 부분으로 새로운 뇌 신경 세포가 꾸준히 만들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해당 쥐들의 혈액을 분석한 결과, 백혈구의 하나인 Ly6Chi 단핵구가 감소된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같은 관찰 결과를 종합해보면, 면역세포 감소가 기억력 감퇴와 상관관계에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항생제가 장내세균을 파괴하면 변화된 장 환경의 영향으로 단핵구 형성이 감소하고, 단핵구 결핍이 뇌 세포 성장에 영향을 주어 기억력 감퇴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울프 교수는 면역세포가 기억력 감퇴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고자 유전자 조작을 통해 실험쥐 몸에 단핵구의 감소를 일으키는 시험을 추가적으로 실시하였다. 그 결과 Ly6Chi 단핵구가 감소하면 항생제 복용과 비슷한 기억력 감퇴가 나타나는 것이 관찰되었고, 반대로 단핵구의 레벨을 높이면 증상이 호전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파괴된 장내 유익균을 보충시켜주는 프로바이오틱스를 섭취하면 항생제로 인한 기억력 감퇴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실험을 통해 관찰되었다.

장 환경이 면역세포의 정상적인 성장과 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장에서 형성된 면역세포가 혈관을 타고 이동해 뇌와 장을 이어주는 커뮤니케이션 을 한다는 것은 이 논문을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이 연구결과는 ‘Cell Reports’라는 학술지에 게재되었다.

김석진 좋은균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