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정치의 예능화, 예능의 정치화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입력일 2017-04-16 14:52 수정일 2017-04-16 14:54 발행일 2017-04-1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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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5년 주기로 어김없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대권 욕망. 예전보다 반년 당겨진 봄꽃 대선 탓에 방송가에도 정치 바람이 드세게 불고 있다. 18대 대통령선거 당시 ‘이경규의 힐링캠프’에서 비롯됐던 예능의 정치화 현상은 이번 선거에서도 어김없이 목도할 수 있다. 인기 프로그램들은 앞다퉈 대선 후보들을 섭외해 다양한 형태의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인지도를 높이면서 소통경로를 확장할 수 있다. 더불어 방송사는 탄핵정국 이후 정치에 쏠려있는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양자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본래 체면치레를 중시하던 정치와 격식없이 웃음을 추구하는 오락프로그램은 거의 상극에 가까웠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21세기 예능 프로그램은 그 어떤 창구보다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그 동안 암울한 정치상황에 실망한 국민들의 정치 무관심 덕분에 역설적으로 예능 프로그램은 대중적 인기를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예능은 딱딱했던 소통방식을 꺼려했던 시청자들에게 정치에 대한 접촉면을 넓히면서 정치적 소통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만큼 예능이 중요한 키워드가 됐다. 그러다보니 기존의 정치방송도 예능의 흐름에 올라타고 있다.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 같은 프로그램은 정치 프로그램에 예능적 요소를 가미해 정치 엄숙주의를 과감하게 탈피했다는 점에서 큰 박수를 받았다. 다만 출연하는 정치인이나 출연시키는 방송제작자는 정치의 감성화, 알맹이 없는 정치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해야 하고 공정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대선마다 벌어졌던 TV토론도 유례없는 격전을 예고하고 있다. 그 동안 우리 정치판의 토론은 다소 형식적이었기 때문에 정책보다 네거티브에 치우진 나머지 지도자로서의 진면목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우리도 이번 대선부터는 트럼프 대 힐러리처럼 무대본 끝장토론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마치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처럼 벌거벗겨진 실력만 가지고 진검승부를 겨룬다.

중앙선거위원회도 시간총량제 자유토론, 스탠딩 토론 방식을 전격 도입했다. 각자 연설대에 서서 발언 시간 내에서 사회자 질문에 답하고 후보자들 간 정해진 주제 없이 상호토론을 벌인다.

정치의 예능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끝장·난장토론 방식과 함께 후보자들이 기조연설마저 생략하고 국민 공모로 선정된 공통질문에 답변한다는 점은 국민의 참여도를 넓히므로 고무적이다. 자칫 이미지 정치에 함몰될 위험도 없지 않다. 이에 TV토론 운영의 묘를 살리면서 유권자에게 반드시 제공해야 하는 콘텐츠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올바른 선택을 위해 양질의 정보가 공정한 틀에서 제공된다면 예능이라는 형식 또는 요소를 띤 정치 콘텐츠는 오히려 환영받아야 할 것이다.

2017년 대한민국의 시계는 정치와 예능이라는 큰 흐름에 맞춰져 있다. 정치의 예능화, 예능의 정치화는 자연스레 우리의 일상을 파고 들었다. 잠깐 정신줄을 놓으면 정치와 예능의 홍수에 휩쓸릴 수 있다. 예능이 친절하게 깔아놓은 멍석에 국민들이 구경꾼, 바람꾼으로 정치인들의 술수에 넘어가는 실수는 없어야 한다. 문모닝, 안모닝 이전에 우리들의 굿모닝을 우선시할 수 있는 냉철한 균형감을 장착해야 한다. 5년마다 되풀이됐던 후회는 “마 고마해!”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