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우병우와 맹사성

김우일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입력일 2017-03-30 17:00 수정일 2017-03-30 17:00 발행일 2017-03-3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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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일 대우M&A 대표
김우일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

대통령의 탄핵사건과 관련하여 많은 사람이 구속또는 기소되거나 수사를 받았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세간의 관심을 끄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대통령의 최측근인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다.

사회부패척결을 평생의 꿈으로 삼았다는 그는 고교 3년간 전교 1등을 놓치지않고 서울법대에 진학, 재학중 최연소 사법시험합격이라는 영예를 안고 검사생활을 시작, 서울중앙지검, 대검중수부를 거쳐 민정수석이 된 그야말로 최고 엘리트의 수재였다.

그런 그가 어찌하여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에 관여하는 등 최고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온 국민들의 비난대상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필자(김우일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는 조선초기 명재상이며 후세들에게 추앙을 받는 맹사성(孟思誠)을 떠올려 본다.

맹사성은 뛰어난 학식으로 열아홉에 문과에 장원급제, 스무살에 군수에 오른 전형적인 당시의 엘리트 수재였다. 그러하기에 그는 젊은 시절 온통 오만심으로 가득차 온 세상이 자기 손바닥아래 놓여있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런 맹사성이 어떻게 평생을 청렴결백하게 살며 하인이나 노비에게는 관대하고 고위관료에게는 엄하게 대하여 오로지 국가의 기강질서와 문화창달에 크게 기여해 명재상으로 이름을 떨칠 수 있었을까.

맹사성은 아무리 신분이 낮은 사람이 찾아와도 정중히 대하고 아무리 왕이라도 아부하지 않았다. 태종의 부마를 왕의 허락도 받지않고 심문하기도하고, 태종실록을 미리 보자는 세종의 요청도 일언지하에 거절하기도했다.

어릴 때부터 수재이며 자만심이 가득 찬 맹사성이 이렇게 만인의 칭송을 받고 명재상으로 변신한 배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일화가 눈에 띈다.

맹사성은 젊은 나이에 파주군수에 오른 후 그 고을에서 유명한 선사를 찾아 물었다. “스님, 제가 이 고을을 다스리는데 필요한 지혜를 하나 주십시오.”

그러자 스님은 “나쁜 일을 버리고 착한 일을 취하시면 됩니다”라고 답했다.

맹사성이 코웃음치며 “ 그런 말은 삼척동자도 아는 얘기입니다”라고 답하고는 거만하게 일어나려하자 스님이 차 한잔 하라며 붙잡았다.

스님은 맹사성의 찻잔에 찻물이 넘쳐 흐르는데도 계속 차를 따랐다. 당황한 맹사성에 스님은 말했다.

“찻물이 넘치면 방바닥을 적셔 더럽히게 됩니다. 지식과 학식, 똑똑함도 넘치면 인품을 더럽히게 됩니다.”

창피했던 맹사성은 황급히 방문을 열고 나가려다 문틀에 머리를 세게 부딪쳤다.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자고로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

젊은 나이에 이 깨달음을 얻은 맹사성은 이후 공직에서 교만을 버리고 겸손과 청빈으로 살며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대해 후세에 귀감이 됐다.

650여년전의 엘리트 관료인 맹사성과 2017년의 엘리트 관료인 우병우의 말로는 비견해볼 만 한 가치가 있다.

한 사람은 평생을 청렴결백하며 초가집에 빗물이 새는 상황에도 다른 백성들은 이 초가집도 없지 않으냐는 자세로 멸사봉공해 만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반면, 또 다른 한사람은 부와 권력을 축적하며 최고권력층에 아부하여 출세를 지향하다 결국 온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나락으로 떨어진 이유는 바로 한가지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겸손’이다.

김우일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