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할머니의 털양말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입력일 2017-03-29 14:37 수정일 2017-03-29 14:38 발행일 2017-03-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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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상무님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할머니가 뜨개질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손자가 문득 물었다. “할머니 뭘 뜨시는 거예요? 혹시 제 것 만드시는 건가요?” 할머니는 뜨개질 하시던 손길을 멈추고 손자에게 대답했다.

“그래, 우리 손자 발을 따뜻하게 해줄 양말을 뜨는 중이란다. 네가 훗날 훌륭한 일을 많이 하는 어른이 됐을 때 이 할미가 떠 주었던 털양말을 기억했으면 좋겠구나. 할머니가 해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란다.”

손자는 털양말을 주시했다. 파란 색깔의 털양말은 중간에 다른 색깔을 곁들인 스프라이트 모양이었고, 털실을 자주 바꾸면서 번거로운 작업을 거친 작품이었다. 할머니는 털양말에 손 다림질을 하더니 손자의 발을 끌어 당겨 크기를 대 보았다. “잘 맞네. 우리 손주 발에 얼음은 얼씬도 못하겠지!” 며칠 낮 밤을 한 땀씩 떠내려갔던 할머니의 시공 속에는 며느리의 핀잔도 적잖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 요즘 손뜨개 양말은 안 신어요. 값싸고 질 좋은 양말이 지천인데….” 며느리가 한마디 하려다가 시어머니의 속 깊은 내막을 알아채고 말끝을 흐렸다. 할머니의 손뜨개질은 유일한 낙이다. 대 여섯 코의 뜨개질을 하다가 먼 산을 바라보고, 또 너 댓 바늘 이어가다가 불현듯 옛날 빛바랜 사진첩을 들추기도 하는, 노모의 사색을 안내하는 길잡이였다.

“싼 것 많지. 편한 것 많고, 근데, 부모의 정성이 담긴 양말이 있더냐?” 시어머니의 일침에 며느리 목소리는 응석 담긴 콧소리로 변한다.

“엄니, 눈도 침침하시고, 손가락 마디마다 자꾸 쑤신다고 하시면서 뜨개질에 종일 정신 쏟고 계시니까 그렇지요.” 할머니의 장롱 속에는 7남매와 손주 몫까지 20여 족의 털양말이 만들어져 있다. “저것 봐라. 연산홍이 만개했잖느냐. 추운 겨울도 정성 앞에서는 설설 기는 법이다.”

아주 오래전 일본 일간신문에는 꼬부랑 할머니의 사진이 1면에 크게 실렸었다. 척 보아도 변방 시골에서 막 올라온 할머니였다. 동경 한복판에 서 있는 이 할머니의 한 손에는 보따리가 들려있고, 다른 한 손에는 나무 지팡이가 힘없이 걸쳐있었다. 기사 내용은 감동을 자아냈다.

어렵게 공부한 아들이 정치에 입문하고 기어코 수상에 오르게 되자, 이 노모는 아들이 좋아하는 찹쌀떡(모찌)을 만들어 그것을 먹이겠다고 상경한 것이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일본 열도에 눈물 바람을 일으켰다.

사임당이란 드라마를 보면 서당을 좌지우지하는 어머니회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아마 요즘의 세태를 당시의 배경에 접목시켜 잘못된 사회 일각에 경종을 일깨우려는 의미였겠지만 일부 엄마들의 극성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정은 없고 내 자식 먼저만 보인다.

“아이에게는 욕망과 흥미를 환기시키는 것이 제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책을 짊어지고 다니는 나귀를 기르는데 그치고 말게 된다”는 몽테뉴의 말에 공감한다. 언론인 선우휘 선생도 인간의 어리석음을 ‘불꽃’에서 지적하고 있다.

“남을 억압하려는 포악성, 착취하려는 비정, 남보다 뛰어났다는 교만, 스스로 나서려는 값싼 참견, 남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는 무엄함. 이것들이 인간이 지닌 어리석은 조건이다.”

수백, 수천 번을 한 땀씩 떠야 완성 되는 할머니의 털양말처럼, 사회곳곳에서 소리 없이 정성을 다하는 아지랑이가 피어올랐으면 좋겠다.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