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부른 박근혜 ‘3대 자충수’ ... 약속 불이행과 번복, 변호인 헛발질

라영철 기자
입력일 2017-03-11 21:33 수정일 2017-03-11 21:46 발행일 2017-03-11 99면
인쇄아이콘
[대통령 탄핵] 물러나다<YONHAP NO-4937>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21분.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을 발표한 시간이다. “설마…”했던 박 대통령 측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지만, 보수 정치권에선 헌재의 이번 결정 결과를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국민들과 특히 헌재 재판관들에게 비쳐진 박 대통령과 변호인단, 그리고 측근들이 전방위적으로 보여준 ‘자충수’가 악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다.

◇ 박 전 대통령 자신의 ‘약속 불이행’

박 전 대통령은 스스로 ‘약속의 정치인’이라고 자신을 이미지화 해 왔다. 서면으로 제출한 자신의 탄핵심판 최후진술에서도 “저는 정치인으로서 지켜야 할 가치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 믿고 살아왔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헌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신한 그 ‘국민과의 약속’을 파기한 것을 파면 판단의 가장 주요한 근거로 삼았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 사실을 숨기기 위해 국민들에게 거짓으로 해명하는 등 진정성이 결여되었다며 이를 헌법 수호 의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씨의 국정개입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그에 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부인하고 오히려 그런 의혹 제기를 비난하며 최씨를 감쌌다. 최씨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을 오판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헌재나 특검과 한 약속도 어겼다. 2차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 규명에 협조하겠다”고 해 놓고는 검찰 조사는 물론 특검의 대면 조사와 청와대 압수수색에도 응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검찰 수사를 “상상과 억측으로 지은 집”이라며 수사 결과 자체를 부정하기 까지 했다.

결국 헌재는 이 같은 약속 불이행을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고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선택했던 약속 불이행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 번복, 그리고 고집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90일간 진행된 박영수 특검의 수사 기간 내내 약속을 번복했다. 검찰 수사에 응하겠다고 했다가 검찰 조사를 거부했고, 그 대신 특검 대면 조사 요청에는 응하겠다고 했으나 그 역시 “특검이 일정을 고의로 언론에 흘렸다”며 엉뚱하게 책임을 돌리며 번복했다.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도 압수수색에 응하는 척 하다가 결국 총력 거부하는 등 촛불시민들의 원성을 샀다. 검찰의 청와대 경내 압수수색 시도가 무산된 후, 특검은 법적 소송까지 제기했다. 하지만 압수수색 영장은 집행되지 못했다.

대 국민 담화 때 마다 청와대 기자단이 요청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모두 외면했던 박 전 대통령은 한 보수 인터넷 매체에 나와 자신의 모든 의혹과 혐의를 부인했다. 중도 보수층 조차 이를 두고 “대통령이 성난 촛불 민심에 불을 부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이 파면 결정 후 보여준 모습에 대해선 중도 및 보수층에서 조차 실망감을 드러냈다. 박 전 대통령은 곧바로 청와대를 나오지 않았다. 삼성동 사저의 보수가 필요하다는 구실로 그대로 청와대 경내에 머물렀다. 헌재의 파면 결정에 대해 진솔한 입장 표명도 없었다. 국민들은 “이런 결론이 나 참담하고 송구하다. 하지만 국민들의 민심을 알았다. 대승적으로 승복한다”는 말을 하고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올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현직 대통령의 형사상 불소추 특권이 없어져 검찰이 칼날을 들이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 쉽게 결정하긴 어려운 상황이겠지만, 박 전 대통령의 침묵에 많은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이 헌재 판결에 끝까지 승복하지 못하겠다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 변호인단의 헛발질

이번 탄핵 심판에서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된 것에 가장 공을 세운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대통령 변호인단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보수층에서 조차 비난을 거두지 않고 있다.

대통령을 변론할 논리적 접근에 주력했어야 할 변호인단이 도리어 헌법재판소를 공격하는 우를 범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헌재 재판관들에게 모욕감을 안겨주기까지 했다.

특히 뒤늦게 합류한 김평우 변호사는 보수층 일각에서 “세작(스파이)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막말과 거친 행동으로 박 전 대통령을 오히려 위기로 몰아세웠다.

그는 “당뇨가 있다”며 지연작전을 펼치다 제지를 받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재판부에 손가락질하고 고성을 지르는 상식 밖의 변호로 빈축을 샀다. 심지어 “(헌재재판관이) 청구인의 수석 대리인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이라며 자극하기도 했다. 헌재로선 변론 보다 억측과 막말을 일삼는 변호인단의 말을 긍정적으로 귀담아 들을 이유가 없었다.

변호인단은 헌재의 파면 결정 후 집회에 참석해선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은 헌재 발 ‘역모’였고 ‘반란’이었다”며 막말을 멈추지 않았다.

탄핵 사태를 야기한 최순실씨도 박 전 대통령의 추락을 부추겼다. 처음엔 “국민들과 대통령께 죄송하다”해 놓고는, 구속수사가 이뤄지자 ‘특검의 강압에 의한 거짓 자백’이라는 식으로 왜곡시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라영철 안준호 기자 eli7007@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