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알파고 충격 1년, 우리는 달라진 것이 없다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입력일 2017-03-13 15:52 수정일 2017-03-13 15:54 발행일 2017-03-1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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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알파고가 보이지 않는 흔적을 우리들 뇌리에 남기고 간 것이 벌써 1년 전이다. 영국에서 탄생한 알파고는 케임브리지대학 전산학과 출신 서너 명이 만들어냈을 정도로, 소프트웨어(SW)치고는 소규모 급이었다. 알파고를 스포츠카에 비유하자면 마치 현란한 네 바퀴와도 같고, 우리는 “저 바퀴 한번 멋지네!”하고 탄성을 질렀다. 네 바퀴를 그토록 멋지게 굴러가도록 만든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그 원천은 미국, 구글의 소프트웨어(SW)였다.

그러면 알파고를 뭐라고 부르면 적절할까. 바로 응용SW, 쉽게는 ‘앱’이라는 이름으로 약칭된다. 구글의 SW는 앱 수준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즈(Windows) 급이다. 여기에 구글은 독자 개발한 강력한 데이터베이스(DB) 엔진 핵심SW도 가지고 있다. 이처럼 구글이 보유한 엔진SW를 놀이마당으로 삼고, 그 위에서 알파고라는 작은 앱이 신나게 돌아가 이세돌 9단을 제압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알파고 같은 수준의 응용SW를 만드는 데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알파고는 엄밀히 말하면 알고리즘이고, 이런 것을 개발해내는 데는 3~4개월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이 SW알고리즘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보여줄 수 없다. 딥마인드는 구글 엔진을 자유자재로 썼기에 알파고의 위력이 드러난 것이다. 돌이켜보면 영국은 훌륭한 응용SW 하나 애써 개발해 놓고 놀이마당, 즉 플랫폼이 없어 미국에 그 용용SW를 넘겨준 꼴이 됐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한국형 알파고’ 같은 가시적 응용SW를 만들어 내는 일에 계속 혈안이 되게 할 것인가, 아니면 응용SW가 아닌 불가시적 플랫폼SW, 즉 엔진SW 수준에 도전할 것인가에 대해 이제는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엔진SW를 자체개발하고 확보하지 않은 상황에서 응용SW를 백날 개발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현대자동차가 자체 엔진을 개발하기 위해 한발 한발 발걸음을 떼며 멈추지 않았기에 오늘날의 현대 엔진이 나오지 않았는가. SW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자동차 껍데기만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SW에서는 한국 정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정부는 철저히 방관자며, 알파고가 나온 지 1년 후에도 달라진 게 없다. SW가 중요한 시대, ‘기업이 안 하겠다는데 난들 어쩌냐’는 식으로 지난 30년 간 혼자만 읊고 있는 까닭이다. 어느 시대건 기업 몫과 역할이 있고, 정부의 몫과 역할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엔진SW 개발은 정부의 몫이다. 기업으로 하여금 개발할 의지를 갖도록 제도와 법령을 제정하는데 머리를 짜낼 필요가 있다. 현 상황에선 설령 한국형 알파고를 만들어낸다 할지라도 반갑지 않다. 남 좋은 일만 하다 말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기차역이 복잡할 때, ‘어느 플랫폼으로 도착하느냐’고 묻곤 한다. ‘1번 플랫폼에서 만나자’고 대답한다. 그런데 서울역 1번 플랫폼이 미국 뉴욕에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기차가 무슨 수로 서울로 입장할 수 있겠는가. 플랫폼은 돈을 거둬들이는 수금 현장이다. 플랫폼은 임대용이 아니다. 한국형 하층부 플랫폼을 먼저 갖추기 전에는, 인공지능같은 상층부에 국가예산 수 천억 쏟아 부어봤자 밑 빠진 독에 물붓기다. SW경쟁력은 국산형 플랫폼 구비 전제조건 없이는 절대 갖출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