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주유소 '공공의 적' 도로공사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입력일 2017-03-02 15:17 수정일 2017-03-02 17:41 발행일 2017-03-0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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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

공기업인 한국도로공사의 석유시장 개입이 도를 넘어섰다. 한국도로공사법에 의하면 도로공사는 “도로의 설치·관리와 그 밖에 이에 관련된 사업을 하게 함으로써 도로의 정비를 촉진하고 도로교통의 발달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하지만 최근 도로공사는 본연의 목적보다는 기름 값 낮추기에 골몰하고 있다는 인상을 줘 석유시장에서 반목이 크다.도로공사는 명절이나 휴가철은 물론 평소에도 고속도로 주유소 중 가장 판매가격이 싼 곳을 발표하며 가격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단풍철을 맞아 보도자료를 내고 고속도로 주유소가 전국 평균 대비 54원, 알뜰주유소 평균대비 22원 낮다며 노골적인 호객행위를 일삼기도 했다. 기름 값이 싸다는 소문이 확산되면서, 압구정동에 사는 운전자가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 주유소까지 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지난해 고속도로 주유소의 판매량은 2014년 대비 9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채철표 담당 처장은 “서민 가계의 부담을 줄여 국민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유류 판매가격 관리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며 석유시장 개입을 노골화했다. 2년 반에 판매량이 90% 이상 증가한 고속도로 주유소의 판매 비결은 무엇일까?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석유시장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다. 바로 보이는 권력, 공기업의 부당행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도로공사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고 있는 저가판매의 비결은 바로 ‘운영서비스 평가지표’다. 도로공사는 주유소 운영자들에게 연말마다 주유소의 운영관리 및 유가인하 매출관리, 서비스 등 9개 부문에 대해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중 핵심이 바로 유류 판매가격과 매입가격 인하노력 부문으로, 전체 평가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고속도로 주유소 운영자들은 연말평가에서 최하위 5등급을 연속 2회 받으면 바로 운영계약이 해지된다. 따라서 상위 등급을 받기 위해 평소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큰 틀에서 구도를 만들어 놓고, 매일 최저가 판매경쟁을 시키고 있다. 전국 고속도로 주유소의 기름 값을 모니터링하고, 인근 국도변 최저가 판매주유소 보다 더 싸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현재 주유소 운영자들은 판매량 중 50%를 석유공사와 도로공사에서 의무구매하고 있다. 때로는 이들 공사의 공급 가격이 시장보다 비싼 경우가 있음에도 최저가 경쟁을 시키다보니 국제유가 상승기에는 많은 주유소들이 적자를 보기도 한다. 공사는 이럴 때마다 주유소에서 기름 팔아 밑진 것을 휴게소 수익으로 벌충하라는 해괴한 논리를 펼쳐왔다.문제는 공사의 이러한 비정상적 행태로 고속도로 주유소 운영자 뿐 아니라, 인근 국도변 골목상권 주유소들이 죽을 지경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한국주유소협회 충북지회는 지난 설 연휴에 앞서 성명을 내고 “도로공사의 최저가 판매정책으로 고속도로 주유소 인근 지역의 영세주유소들이 가격인하 여력이 없어 경쟁에서 자연도태 되거나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며 “도로공사가 사실상의 공권력을 남용해 고속도로 주유소 운영자들에게 최저가 판매를 강요해 촉발되는 불공정한 시장경쟁 행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도로공사의 부당한 주유소 시장개입으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부 주유소들이 무자료나 가짜석유 등을 불법 유통시키는 등 부작용이 초래되고 있다”고 주장했다.도로공사의 석유시장 개입이 갈수록 노골화되면서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국내 석유유통시장의 양대 축인 석유유통협회와 주유소협회는 조만간 도로공사 본사 앞에서 석유시장 부당개입 중단을 호소하는 단체행동에 나설 예정이다. 또한 도로공사의 시장 개입이 공정거래법 위반은 아닌지에 대해 따져본 뒤, 공정위 제소를 준비하고 있다. 도로공사는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시행하고 있는 포퓰리즘적 정책을 당장 중단하고, 공사법이 정한 본연의 목적에 충실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양진형 한국석유유통협회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