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빗물을 받아 쓰는 부자 나라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입력일 2017-02-26 13:55 수정일 2017-02-26 13:57 발행일 2017-02-2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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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상무님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

지금은 작고한 국내 모 철강기업의 총수가 어느 날 수행 비서를 대동하고 지방의 계열사 순방에 나섰다. 순시를 마친 총수는 공장 경영이 잘되고 있음을 칭찬하면서 격려금까지 전달하고 숙소에 돌아왔다. 그리고 새벽 2시경 총수는 갑자기 수행 비서를 깨워 공장으로 다시 가 보자고 재촉했다.

관리자가 다 퇴근한 한밤중에 공장을 순시하던 총수는 한 현장근무자가 멀쩡한 강판을 절단기로 잘게 자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원인인즉, 생산 수율을 높이기 위해 불량품을 아예 스크랩화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총수는 기가 막혔다.

이 사건 이후로 그룹 전 계열사에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가 걸렸다. 의식개혁 운동은 물론이고 단돈 100원도 아낀다는 대대적인 원가절감 운동이 전개됐다. 공장에 떨어진 못 한 개라도 주워야 했다. 시냇물과 빗물로 공장 바닥을 청소를 하자는 번뜩이는 제안도 속속 접수됐다.

당시는 철강 호황기여서 회사 곳곳에서는 전근대적인 절약방식이라고 원성이 높았다. 마음껏 쓰고 더 벌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그러나 의식개혁운동은 멈추지 않았다. 그 해 연말, 임직원들은 창립 이래 최대의 성과급을 받았다. 무려 1000%에 육박했었다.

필자는 4년 전, 독일 여행 중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독일인으로부터 오찬 초대를 받고 막 식사를 하려는데, 갑자기 장대 같은 비가 내렸다. 독인인 부부는 양해를 구하더니 온 식구가 부산하게 움직였다. 자세히 보니 큰 함지박과 드럼통 같은 그릇으로 빗물을 받아 내고 있었다. 필자와 아내도 거들면서 이유를 물었다. 한국인들은 빗물을 그냥 버리느냐”는 반문이 돌아왔다. “그렇다”는 말에 독일인 부부는 고개를 갸우뚱할 뿐 뭔가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빗물을 어디에 쓰느냐”고 재차 물었다.

독일 가정은 대부분 큰 물통을 정원 같은 곳에 파묻어 두고 비가 오면 이곳에 받아 두었다가 화장실 변기 청소를 하거나 세탁기에 연결해서 빨래용으로 사용하고 있단다. 정원수는 꼭 받아둔 빗물로 뿌려준다고 어깨를 으쓱했다. 아주 오래된 독일의 절약정신을 목격한 우리 부부는 목침을 맞은 듯 멍해졌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4만 달러를 넘는 독일 국민들의 보편적인 생활상을 보더라도 우리는 허세가 많다. 독일인들은 주거환경도 소박하고, 가구와 가전제품들도 오래된 엔틱 제품을 귀하게 여긴다. 핸드 메이드 제품을 선물하면 환호를 지를 정도로 고마워한다. 자동차는 소형을 선호하고 의복도 검소하다.

대형차를 타고 다녀야 홀대받지 않고, 고급 식당에서 손님 접대를 해야 인사치레가 되고, 명품이 아니면 귀한 선물로 생각지 않는 우리와 다르다. 주부가 정성껏 차림 음식을 나누며 가족사진을 보여주기도 하고, 얼굴 마주 보며 대화하는 것을 최고의 대접으로 생각하는 문화의 차이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록펠러도 석유 한 방울, 못 한 개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가 브릉크린 제관소에서 현장직 기능공이 원료 한 방울 줄일 수 있는 제안서를 내자 크게 기뻐했다는 일화는 요즘과 같은 저성장기에 본받을 만한 의식이다. 좀처럼 늘지 않는 소득, 빠르게 오르는 물가, 여기에다가 미래 수입에 대한 불안까지 더해지면서 집집마다 고민이 깊은 시대에 일명 ‘짠테크’ 정신이 사회 저변에 정착됐으면 한다.

김종대 전 동국제강 상무